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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 교회는 두 개의 문을 만들었는가? : 예배당으로 본 한국 교회 100년사
왜 조선 교회는 두 개의 문을 만들었는가? : 예배당으로 본 한국 교회 100년사
- 자료유형
- 단행본
- 0015422370
- ISBN
- 9788998480066 03910 : \15000
- 국립중앙청구기호
- 236.911-19-23
- KDC
- 236.911-6
- DDC
- 275.19-23
- 청구기호
- 236.911 최54ㅇ
- 서명/저자
- 왜 조선 교회는 두 개의 문을 만들었는가? : 예배당으로 본 한국 교회 100년사 / 글: 최석호 ; 옥성삼
- 발행사항
- 서울 : 시루, 2019
- 형태사항
- 277 p. : 천연색삽화, 초상 ; 22 cm
- 서지주기
- 참고문헌: p. 272-277
- 일반주제명
- 한국 교회사[韓國敎會史]
- 기타저자
- 최석호 , 1964-
- 기타저자
- 옥성삼 , 1965-
- 원문파일
- 원문보기
- 가격
- \15,000
- Control Number
- kpcl:233096
- 책소개
-
넓고 큰 한 개의 문 대신 좁고 작은 ‘두 개의 문’을 만들었다.
오늘날 이 문에서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시작된 초기 조선 선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의 선교사들은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조선 사람들에게 근대교육, 근대의료,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리한 변화보다는 유교문화를 존중하며 교회를 지어나갔다.
그래서 군위성결교회는 예배당에 두 개의 정문을 만들었고, 오른쪽 정문은 여자가, 왼쪽 정문은 남자가 사용했다. 정동제일감리교회 벧엘예배당을 중심으로 왼쪽의 배재학당 학생들은 왼쪽 문으로, 오른쪽의 이화학당 학생들은 오른쪽 문으로 드나들었다. 네모난 벽돌 건물인 광주 오웬기념각엔 유난히 문이 많다. 정방형건물 모서리를 중심으로 좌우를 나누어 남녀 출입문을 달리해, 숭일학교 남학생들은 왼쪽 문, 수피아여학교 여학생들은 오른쪽 문을 사용했다. 주일이면 남녀가 교회로 몰려드니 ‘연애당’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예배당 중앙에 장막을 쳐서 정작 당사자들은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었다. 조선 선교 초기에는 이렇듯 장로교회·감리교회·성결교회 3대 교단 모두 남녀 출입문을 달리했다. 강한 유교윤리로 인해 남녀를 엄격히 구별했던 조선 사람을 배려한 건축이었다.
이렇듯 초기의 교회 건축에 나타난 조선 선교의 특징과 초기 조선 선교부터 일제강점기 한국 기독교인들의 항일투쟁까지 한국 역사에서 가장 굴곡진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으며 교회 100년사를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