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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 교회는 두 개의 문을 만들었는가? (예배당으로 본 한국 교회 100년사)
왜 조선 교회는 두 개의 문을 만들었는가? (예배당으로 본 한국 교회 100년사)
저자 : 최석호|옥성삼
출판사 : 시루
출판년 : 2019
정가 : 15000, ISBN : 9788998480066

책소개


넓고 큰 한 개의 문 대신 좁고 작은 ‘두 개의 문’을 만들었다.
오늘날 이 문에서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시작된 초기 조선 선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의 선교사들은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조선 사람들에게 근대교육, 근대의료,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리한 변화보다는 유교문화를 존중하며 교회를 지어나갔다.

그래서 군위성결교회는 예배당에 두 개의 정문을 만들었고, 오른쪽 정문은 여자가, 왼쪽 정문은 남자가 사용했다. 정동제일감리교회 벧엘예배당을 중심으로 왼쪽의 배재학당 학생들은 왼쪽 문으로, 오른쪽의 이화학당 학생들은 오른쪽 문으로 드나들었다. 네모난 벽돌 건물인 광주 오웬기념각엔 유난히 문이 많다. 정방형건물 모서리를 중심으로 좌우를 나누어 남녀 출입문을 달리해, 숭일학교 남학생들은 왼쪽 문, 수피아여학교 여학생들은 오른쪽 문을 사용했다. 주일이면 남녀가 교회로 몰려드니 ‘연애당’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예배당 중앙에 장막을 쳐서 정작 당사자들은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었다. 조선 선교 초기에는 이렇듯 장로교회·감리교회·성결교회 3대 교단 모두 남녀 출입문을 달리했다. 강한 유교윤리로 인해 남녀를 엄격히 구별했던 조선 사람을 배려한 건축이었다.

이렇듯 초기의 교회 건축에 나타난 조선 선교의 특징과 초기 조선 선교부터 일제강점기 한국 기독교인들의 항일투쟁까지 한국 역사에서 가장 굴곡진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으며 교회 100년사를 소개하고 있다.

목차


서론 100년 교회 100년 예배당
생생문화재
군위성결교회 문화재예배당
정동제일감리교회 벧엘예배당
양림장로교회 오웬기념각

1 군위성결교회 문화재예배당

군위 - 순후·질박한 고을

군위 사람들 - 거룩한 사람들
재흥총회 의장: 천세광 목사
추기경: 김수환 신부
보각국사: 일연 스님

한국성결교회 - 할렐루야 아멘

군위성결교회 - 서양 굿 구경 가자!

군위 두 개의 문 - 군위성결교회 문화재예배당

2 정동제일감리교회 벧엘예배당

정동 - 대한의 봄을 품다
왕이 사랑한 정동
정동으로 가는 두 개의 문

정동 사람들 - 아름다운 개척자
정동과 정동제일감리교회 사람들
한국감리교회 선교의 개척자: 아펜젤러

한국감리교회 - 근대화와 복음의 전령사
미국감리교회 한국 선교(1885-1930)
자치시대(1930-1945)
해방과 자립시대(1945-현재)

정동제일감리교회 - 감리교회의 어머니

서울 두 개의 문 - 정동제일감리교회 벧엘예배당
두 개의 문
벧엘예배당 건축 배경
벧엘예배당 건축
벧엘예배당 증축(1916, 1926)
벧엘예배당의 빛과 그림자
다시 찾는 벧엘예배당

3 양림장로교회 오웬기념각

양림동 - 대한의 봄을 품다
양림동의 지문
저세상 길목에서 하나님 나라 길목으로

양림동 사람들 - 사랑의 순례자
양림동을 밝힌 열두 명
조선 남도 개척자: 유진 벨
모두 버리고 떠난 사람: 오방 최흥종

한국 장로교회 - 겨자씨 교회
한국 장로교회의 서막
미국남장로교회 호남 선교
한국 장로교회 공의회와 독노회
일제강점기 장로교회
광복 후 한국 장로교회 성장과 분리

양림장로교회 - 세 지붕 한 가족
광주선교부와 양림장로교회의 시작
양림장로교회의 성장과 분리
한국 장로교회 분열과 세 양림장로교회

광주 두 개의 문 - 양림장로교회 오웬기념각
두 개의 문
선교사 오웬과 기념각
오웬기념각의 건축양식
비아토르의 쉼터
근대를 공연하고 근대를 성찰하다

미주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