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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일본의 요절복통 여행기) 동해도 도보여행기. 1 3~5추가편(동해도~이세)
(근세일본의 요절복통 여행기) 동해도 도보여행기. 1 3~5추가편(동해도~이세)
- 자료유형
- 단행본
- 0015382969
- ISBN
- 9788984118669 (v.1)
- ISBN
- 9788984118652 (세트)
- 언어부호
- 본문언어 - kor, 원저작언어 - jpn
- KDC
- 833.4-6
- DDC
- 895.633-23
- 청구기호
- 833.4 십41동
- 서명/저자
- (근세일본의 요절복통 여행기) 동해도 도보여행기. 1 3~5추가편(동해도~이세) 짓펜샤 잇쿠 저 강지현 역
- 발행사항
- 서울 : 세창, 2019
- 형태사항
- 457 p. : 삽화 ; 24 cm
- 총서명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 589
- 주기사항
- 원저자: 十返舍一九
- 원저자/원서명
- 東海道中膝栗毛
- 기금정보
- 2016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 일반주제명
- 일본문학
- 일반주제명
- 에도시대소설
- 기타저자
- 십반사일구
- 기타저자
- 강지현
- 기타서명
- 3~5추가편(동해도~이세)
- 통일총서명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 동양편 ; 589
- 기타저자
- 짓펜샤 잇쿠
- 가격
- \34500
- Control Number
- kpcl:232444
- 책소개
-
200년 전의 언어유희 소설, 사투리 소설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
19세기초반의 일본전국을 강타한 초대형 밀리언셀러 『동해도 도보여행기』에는 식욕?성욕?배설이라는 생리작용에 충실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가히 대중소설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기초한 ‘개그?코미디’가 경묘한 문체로 전개되는 가운데, 하층 서민들이 속사포처럼 내뱉는 비속어 및 은어의 절묘한 리듬감이 독자를 춤추게 한다.
무사에서부터 마부, 거지, 시골 아낙네, 매춘부까지 다양한 계층의 지역민들에 의한 유행가, 유행어, 유행풍물, 그리고 역참정보, 물가정보가 넘쳐나는 근세일본의 요절복통 여행기이다. 지저분하고 노골적인 일화들이 멋쩍고 거북하다고 지금 독자들은 회피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각 지방사투리에 의한 말장난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일본 각 지역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체감하게 해 주는 귀중한 향토문학이자 풍속소설 『동해도 도보여행기』이다.
에도에서 혼자 사는 가난뱅이 중년 야지와 그에게 얹혀사는 젊은이 기타하치. 어느 날 가진 재산 전부 팔아치워 마련한 여비로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그 1?2편 (『근세일본의 대중소설가, 짓펜샤 잇쿠 작품선집』소명출판, 2010년)에 이어, 본 역서에서는 동해도를 걸어 도착하는 이세신궁참배 길까지를 제1권에, 교토와 오사카 구경 길을 제2권에 담는다.
『동해도 도보여행기』는 장편소설인 만큼 그 범위가 광대하다. 즉, 1802년 제1편 간행 후, 속편(『續膝栗毛』)으로 이어지면서 1822년까지 간행되었으므로 그 분량은 광범위하다. 그 중 동해도를 걸어 도착하는 이세신궁 참배길(伊勢參宮)이 5편추가 까지, 교토(京都)구경 길이 6?7편에, 오사카(大阪)구경 길이 8편에 전개되는 가운데 여기까지가 정편(正編)에 해당된다.
동해도(東海道)는 에도(江?, 동경)의 니혼바시(日本橋)로부터 교토(京都)의 산조 오바시(三?大橋)까지 총 492km로, 53개의 역참이 있으므로 ‘동해도53역’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본 원작에서 두 주인공 야지?기타는 제 43역참인 ‘욧카이치’까지는 동해도를 가나, 이후에는 동해도를 벗어나 이세 순례길을 걸은 후, 교토, 오사카까지 간다. 그들의 원래 여행목적이 ‘이세참배’였기 때문이다.
한편 실제 동해도 53역참을 야지?기타가 순례하도록 그린 2차 창작물도 있다. 본 역서에서 참고용 인용 도판으로 사용한 그림주사위판 《53역참골계 도보여행기 그림》(五十三?滑稽膝栗毛道中??:《즈에??》라고 약칭.1848~1854년경 간행)이다.
그럼 ‘이세참배’의 당대적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본 작품 『동해도 도보여행기』가 완결되고 8년 뒤인 1830년, 에도시대 최대의 대규모 이세신궁 참배행렬 즉, 5백만여 명이 불과 3개월 사이 이세에 집결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일본 총인구가 3,100~3,300만 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운데, 총인구의 5분의 1정도가 한 해 동안 이세참배여행을 떠났음을 뜻한다. “이세에 가고 싶어, 이세 길을 보고 싶어,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伊勢に行きたい伊勢路が見たい、せめて一生に一度でも♪)”라는 노래가 유행할 정도였다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