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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문제의 '한화' 정책과 낙양 호인사회 : 북위 후기 호속 유지 현상과 그 배경
효문제의 '한화' 정책과 낙양 호인사회 : 북위 후기 호속 유지 현상과 그 배경
- 자료유형
- 단행본
- 171110111033
- ISBN
- 9788946058910 93910 : \46000
- KDC
- 912-5
- 청구기호
- 912 최78ㅎ
- 저자명
- 최진열
- 서명/저자
- 효문제의 한화 정책과 낙양 호인사회 : 북위 후기 호속 유지 현상과 그 배경 / 최진열 지음
- 발행사항
- 파주 : 한울아카데미, 2016
- 형태사항
- 503 p : 삽화, 표 ; 24 cm
- 총서명
- 한울아카데미 ; 1891
- 서지주기
- 참고문헌(p.477-496)과 색인(p.497-503) 수록
- 초록/해제
- 초록진 시황제의 첫 번째 중국 통일부터 청 멸망까지 이민족 왕조가 중국의 일부(화북) 혹은 중국 본토 전체를 지배한 기간은 모두 1,101년(각각 715년과 386년)이다. 최근 2000년 동안 이민족이 중국의 일부 혹은 전부를 지배했던 기간이 51.6%라면 이민족이 중국에 끼친 정치적.문화적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 학계는 '미개한' 이민족이 중국의 일부 혹은 전체를 지배하더라도 우수한 중국문화에 동화되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기 종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했던 '금'이나 '청'과는 달리, 북위를 세운 이민족 지배층은 다른 이민족들과는 달리 '자발적인' 동화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이른바 효문제의 '한화 정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북위 효문제의 '한화 정책'이 선언에만 그친 공수표였으며 실증적인 검증을 통해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수도 낙양에 살았던 이민족들은 '국제도시' 낙양에서 자신들의 언어와 의식주 등 풍습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중앙아시아, 인도의 사상과 종교, 문화를 받아들였다. 최소한 북위 후기 수도 낙양은 중국문화와 유목민의 초원문화, 중앙아시아의 문화 등이 공존한 문화 공존의 장소(샐러드 볼)였다. 이 책은 동화론의 편견을 깨고 북위 후기의 사회와 문화를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가 크다
- 기타서명
- 북위 후기 호속 유지 현상과 그 배경
- 가격
- \46,000
- Control Number
- kpcl:218375
- 책소개
-
『효문제의 한화 정책과 낙양 호인사회』는 북위 효문제의 ‘한화 정책’이 선언에만 그친 공수표였으며 실증적인 검증을 통해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효문제의 ‘한화 정책’ 선언 자체를 맹목적으로 맹신하는 풍토를 지양하고 북위 낙양 시대에도 호속이 실존했으며, 북위 후기의 수도 낙양에 호인과 한인, 서역인 등의 다원적인 문화가 공존했음을 최초로 강조하고 밝혔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