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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 라이어 (태넌 존스 장편소설)
베터 라이어 (태넌 존스 장편소설)
저자 : 태넌 존스 지음|공보경
출판사 : 황금시간
출판년 : 2020
정가 : 15000, ISBN : 9791187100911

책소개


〈엔터테인먼트위클리〉 〈뉴욕포스트〉 〈릿허브〉 〈크라임리즈〉
〈북라이엇〉 〈팝슈거〉 〈헬로기글스〉 선정 2020 최고 기대작!!

산후 우울증, 가족 간 상처 등
현실 문제를 섬뜩하게 파헤친 역작

어둡고 뒤틀린 두 자매, 그리고 한 여자
누가 가장 치명적인 거짓말쟁이인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오래전 사라진 동생을 찾아 나선 레슬리. 그러나 그녀가 발견한 것은 살아 숨 쉬는 동생이 아닌, 죽어 있는 시체였다. 동생이 있어야만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던 그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배우 지망생 메리에게 죽은 동생 로빈을 연기해줄 것을 제안한다. 5만 달러라는 거액의 사례금을 거부할 수 없었던 메리는 결국 그 달콤한 유혹이 내민 손을 잡는다. 그러나 대역에 깊이 몰입할수록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는데…….

현지 유수의 매체들이 2020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은 심리 스릴러 『베터 라이어』가 번역 출간됐다. 『베터 라이어』는 세 여인의 믿을 수 없는 진술이 축조한 거대한 가공의 세계 속으로 독자를 유인하여 기어이 길을 잃게 만드는 문제작이다. 작가 태넌 존스는 이 놀라운 데뷔작의 출간과 함께 평단으로부터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거장이 탄생했다”는 극찬을 이끌어내며 영미 스릴러 문학의 가장 찬란한 신성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소설은 죽어야 하는 여인과 죽음을 연기하는 여인, 그리고 죽은 여인이라는 세 여자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세 여인의 갈마드는 고백을 통해, 여성의 내면에 깊숙이 잠복하여 영혼을 잠식하는 공포를 끄집어내 섬뜩한 폭력으로써 그것을 다시금 재현하고, 파헤친다. 그 불안이 포함하는 것은 산후우울증, 젠더 갈등, 동성애, 카인 콤플렉스 등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또는 노골적으로 부정된 터부의 감정과 그와 관련된 소외된 자들의 현실 문제다.

작가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말하면서 익숙한 통념의 세계를 향한 넘실대는 분노로, 혹은 냉소로 그것을 구체화한다. 그러면서도 치밀한 구성과 놀라운 반전을 통한 스릴러 문학 본유의 재미 또한 잃지 않는 영민한 균형 감각을 뽐낸다. 독자는 세 여인의 시선과 거짓말이 끓고 폭발하는 늪지에서 유일한 증인이 되어, 상상치 못한 진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목차


귀걸이를 손안에 쥐었다. 귀걸이의 뒷면이 어린아이의 치아처럼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내가 경찰에 연락하지 않으면 로빈 보이트는 이대로 레이철 브릴런드로 남게 된다. 라스베이거스시는 가족 없는 헤로인 중독자 레이철 브릴런드를 알아서 묻어줄 것이다. 열여섯 살 로빈이 선택한 삶의 길 그대로. 고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땅속에 홀로 묻혀 있기를.
--- p.15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기 직전에 교장실로 불려 가 어머니를 만났다. 나는 어머니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파마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바짝 말았고, 광대뼈 위쪽에는 진한 블러셔를 바른 채였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옷감으로 만든 카디건 대신 연청색 치마 정장에 조끼까지 갖춰 입고, 안에는 목과 손목을 꽉 조이는 하얀색 시폰 블라우스를 입었다. 화장 때문인지 어머니의 얼굴이, 마치 텔레비전에서 부연 화면 효과를 넣은 것같이 느껴졌다.
--- p.149~150

낸시의 자매들은 우리 사이를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아무도 몰랐다. 우리는 서로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섹스를 했다. 낸시는 거의 밤마다, 강박적일 정도로 나를 찾았다. 나를 간절히 원하는 낸시의 마음에는 도저히 싫증이 나지 않았다. 낸시는 나라는 여자애가 아니라, 남자애들 사이에서 도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속의 그 여자애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 자체를 원했기 때문이다. 낸시가 맛보는 나는 본연의 나였다.
--- p.186

언니는 별안간 내 머리채를 틀어잡고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갔다. 나는 언니에게 끌려 내려가며 소리를 질러댔다. 언니는 나를 질질 끌고 손님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누인 뒤 내 위에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거칠게 이불자락을 여몄다. 어둠 속에서 언니는 얼굴만큼이나 예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너랑 말 안 해.” “우리 비밀 때문에?” 내가 숨죽여 물었다.
--- p.271

메리와 닮은 배우를 떠올려보려던 나는 전에 모텔 객실에서 메리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사람들은 메리에게 늘 그런 말을 한다고 했다. 자기가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얼굴을 메리에게 대입하고, 이리저리 섞어서 비교를 한다고.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오직 나만을 떠올릴 뿐이었다.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 외모를 가진 게 더 나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나는 유리로 된 투명한 얼굴을 가졌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내가 아닌 다른 이를 떠올릴 일은 없었다.
--- p.330

“곧 떠나. 다시는 안 돌아와.” “왜?” 낸시는 나를 안고 내 목에 얼굴을 묻었다. “난 네가 여기서 계속 살면 좋겠어.” “난 유령이 되고 싶거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유령은 늙지 않아. 다들 죽을 당시의 모습으로 기억하지.” 그리고 낸시의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너처럼. 나를 영원히 기억해줄 거지, 낸시?”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게 안긴 낸시의 가슴이 숨결을 따라 오르내렸다.
--- p.389~390

임신한 동안에는 정말이지 괴롭고, 모든 게 싫었다. (…) 나는 한번 경험한 뒤로, 임신을 하면 내 몸이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몸은 아기를 담기 위한 일종의 그릇이었다. 임신 관련 책자에서도 나 같은 임신부를 ‘그릇’이라고 불렀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일 테지만 내 입장에선 임신부의 수동성을 비하하는 표현처럼 들렸다. 임신을 하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그런 말을 하면 데이브는 분명 부정했을 것이다. 임신을 위해 노력했던 그 숱한 밤에 그가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봤는지, 아마 그는 기억조차 못할 터였다. 침대 위에서 그는 아버지가 되기 위한 길을 나아가고 있었고, 나는 그 길 위에 놓인 존재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