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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군림
저자 : 아이리스 머독
출판사 : 이숲
출판년 : 2020
정가 : 13000, ISBN : 9791186921845
책소개
『그물을 헤치고』를 비롯해 부커상 수상작 『바다여, 바다여』로 유명한 20세기 영국 대표 작가 아이리스 머독(1919-99)의 핵심 철학을 담은 책이 국내 최초로 번역 출간됐다. 영국 문학계에 큰 영향을 남긴 머독은 철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했다(1948-63). 하지만 철학자로서 머독의 영향과 성과는 한동안 소설가로서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 이전에 행위를 중시하던 규범 윤리학의 대안으로 덕 윤리학이 대두하면서 철학자들은 오래전 출간된 『선의 군림』(1970)에 주목했다. 행동을 중시했던 실존주의나 행태주의 윤리학을 비판하고 덕을 윤리의 본질로 파악한 그녀의 철학만큼 날카롭게 핵심을 파악한 사고를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날로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의 윤리 문제를 말할 때 『선의 군림』은 이제 간과할 수 없는 윤리학 기본서다.
목차
이런 견해대로라면 도덕은 쇼핑 비슷한 것이 된다. 나는 전적으로 책임을 동반한 그러나 자유로운 상태로 상점에 들어가서 상품의 면면에 대해 객관적으로 저울질하고 나서야 비로소 상품을 고른다. 내가 탁월한 객관성과 판별력을 가질수록,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수는 증가한다.
--- p.41
M은 그저 [며느리] D를 정확하게 보려 노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정하게 혹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이 장면이 곧바로 제시하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자유 이미지에 주목하자. 자유는 탈개인적이고 논리적인 복합체 안팎에서 고립적 의지가 갑자기 솟구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자유는 특정 대상을 명료하게 보려는 점진적 노력과 함수 관계에 있다. 여기서 M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점진적인 것, 무한히 완전함에 가까워지려 하는 것이다. 오류 불가 같은 주장과는 거리가 먼 이 새로운 그림은 오류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M은 끝나지 않을 고된 과업을 짊어지게 되었다. M을 형용하면서 ‘사랑’, ‘공정’ 같은 어휘를 사용하기 시작한 순간, 우리는 그녀의 상황을 묘사한 개념적 그림 전체에 ‘점진성’이라는 관념을 도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다름 아닌 완전성 관념이다.
--- p.61~62
사랑은 개별자에 대한 앎이다. D와 직면한 M은 끝나지 않을 과업을 짊어진다. 도덕적 과업은 그 특성상 종결될 수 없다. 주어진 개념 ‘안에서의’ 우리 노력이 불완전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움직이고 살펴보는 과정에서 우리의 개념 자체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 p.67
실존주의는 지성과 의지의 힘을 통해 진정한 실존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원기를 돋우고 자기만족이 스며드는 분위기에서 실존주의 철학을 읽으면서 독자는 자신이 엘리트 작가에게 인정받는 또 하나의 엘리트라는 느낌을 얻는다. 일상적 인간 조건을 향한 경멸은 개인적 구원을 향한 신념과 어우러져 극심한 비관론으로부터 실존주의 작가를 구원한다.
--- p.98
도덕적 삶의 적은 가차 없이 잔인하며 비대한 자아다. 도덕철학은 과거에 간혹 그랬듯이 이 자아에 대한, 그리고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그 자아를 물리치는 기술에 대한 적절한 논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도덕철학에는 그 목적에서 종교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렇게 되면 도덕철학이 중립을 지향해야 한다는 따위의 주장은 당연히 부정될 수밖에 없다.
--- p.100
선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우리 자신이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방법은 무엇일까? 과연 그렇게 될 수는 있는 것일까? 철학자가 그 대답을 모색해야 하는 질문은 바로 이런 것이다. 반성해보면 우리는 선한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그다지 많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 p.101
나는 신을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신은 단일하고 완전하면서 초월적이고 형용 불가능한 존재이자 필연적으로 관심의 실재 대상이었다.(혹은 이다.) 그리고 나는 도덕철학이라면 이런 특성들을 모둔 갖춘 중추적 개념을 유지하는 노력을 반드시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p.104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 작품 속 등장인물이나 벨라스케스, 티치아노의 그림을 완상(玩賞)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지 생각해보자. 자아를 중심으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적 삶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명증성을 갖춘, 올바르고 연민 어린 작가의 시선을 통해 인간 본성의 실제 특질이 드러나고, 우리는 이를 배운다.
--- p.118
윤리적 체계라면 이상적인 것을 찬양해야 하고 그때 그 찬양의 대상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윤리학은 그저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위를 분석하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선한 행위란 무엇이고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가를 획정해주는 하나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 있는가? 이 물음을 앞에 두고 도덕철학자는 답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내 주장이 틀리지 않다면 그 물음에 대한 해답 중 적어도 일부분은 설명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은유의 형식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 p.136
재현 예술, 특히 문학과 미술은 덕 개념이 인간의 조건과 연결되는 독특한 방식을 보여준다. 즉 극히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는 절대적 무목적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을 향유하면서 덕에 대한 사랑을 훈련한다.
--- p.147
우리는 무소유적이고 탈이기적인 사랑을 동반한 예술의 권위에 스스로 굴복한다. 예술은 영원불멸한 것과 일시적인 것을 서로 조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우리에게 열어준다. 재현이든 비재현이든 예술은 진부하고 둔한 백일몽 같은 우리 의식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우리 세계의 면면을 드러내준다. 예술은 세계를 덮은 장막을 뚫고,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실재 관념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술은 죽음과 우연의 맥락에서 덕의 진정한 모습을 외화하여 보여준다.
--- p.149
선 개념을 다룰 때 우리는 반드시 철학 언어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플라톤식 용어를 사용하는데, ‘선 추구하기’ 혹은 ‘선 사랑하기’ 같은 말을 할 때 그렇다. 또한 우리는 일상적인 사물, 사람, 예술 작품을 가리켜 ‘좋은(선한) 것’이라고 진지하게 말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그런 것들의 불완전함 역시 잘 알고 있다. 선이란 말하자면, 완전한 선에 대한 포부와 우리 한계 안에서의 현실적인 성취 사이의 경계에 걸쳐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그 경계의 양쪽을 화합하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해 빠진 우리에게도 ‘완벽해지라’는 명령이 의미가 있다. 선 개념은 우리가 이기적인 층위의 의식 속으로 주저앉지 않도록 막아준다. 선 개념은 그저 선택 의지에 매달린 가격표가 아니며, 일부 철학자들의 바람과 달리 (좋은 칼, 좋은 친구처럼) 기능적이고 가벼운 의미의 ‘선’은 선 개념 구조의 일부분이 될 수 없다.
--- p.155
사랑은 선을 찾아 나서는 영혼의 에너지이자 열정이 되며, 우리와 선을 결합하고 선을 통해 우리와 세계를 결합하는 힘이 된다. 사랑의 존재는 우리가 탁월성에 끌리는 피조물, 선을 위해 창조된 정신적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의심할 여지 없이 뚜렷한 표징이다. 사랑은 바로 태양이 발산하는 열과 빛의 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