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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계곡 (안드레아스 빙켈만 장편소설)
지옥계곡 (안드레아스 빙켈만 장편소설)
저자 : 안드레아스 빙켈만
출판사 : 비채
출판년 : 2013
정가 : 13000, ISBN : 9791185014357

책소개


《사라진 소녀들》로 독일과 한국을 홀린 안드레아스 빙켈만,
더욱 예리하고 대담해진 심리 스릴러로 돌아오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내놓는 작품마다 독일 아마존과 〈슈피겔〉 1위를 독점하는 심리 스릴러의 천재 안드레아스 빙켈만. 그가 한겨울의 험준한 산과 마을을 배경으로 인간 본성을 낱낱이 파헤친, ‘겨울의 맛’이 느껴지는 신작 《지옥계곡 HOLLENTAL》으로 돌아왔다.

첫눈이 흩날리는 겨울, 한 여자가 깊고 험준한 지옥계곡을 힘겹게 오르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같은 시각 정찰을 하던 산악구조대원 로만에게 극적으로 발견된 그녀는 끝내 그의 손을 거부하고 벼랑으로 몸을 던진다. 그후 로만은 공포에 질린 여자의 눈빛이 마음에 걸려 무엇이 그녀를 떠밀었는지 알아내기 위한 탐문에 나선다. 한편 장례식 이후 주변 인물들의 의문사가 이어지고, 같은 비밀을 간직한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한다. 지옥계곡만이 알고 있는 소소한 죄, 얼음과 눈에 덮인 사악한 진실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자들과 자신의 죄를 묻으려는 자들… 그들은 지옥계곡에 무엇을 묻으려 했던 것일까.

그는 《지옥계곡》에 이르러 주제와 소재의 스펙트럼을 넓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파고들었다. 가족애와 우정, 사랑으로 강요된 관계들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드러내 보이며 말살된 도덕성에 주목한 것. 이는 초자연적인 공포가 아닌 근원적이면서도 현실감 있는 공포로 이어졌다. 젊디젊은 여자를 지옥계곡으로 밀어 넣기까지의 과정이 하나둘 드러남에 따라 작가의 질문은 보다 구체성을 띤다.

직접적이면서도 능숙하게 폐부를 찔러오는 솜씨는 여전히 빙켈만답다. 정형화된 미국스릴러와는 전혀 다른 맛을 선사하는 세밀한 구성, 기존 스릴러의 공식을 탈피한 단도직입적이고도 기습적인 전개는 특유의 대담함으로 독자를 만족시킨다. 긴긴 겨울밤을 준비하는 최고의 월동장비가 될 심리 스릴러 《지옥계곡》을 만나보자.

목차


그녀 혼자였다. 말 그대로 완벽하게 혼자였다. 여자가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은 이제 없었다.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더는 없었다. …그녀는 날아오를 듯 팔을 뻗었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조용하게 흐르는 눈물이 속삭이는 초겨울 합창에 스며들었다. --- p.11

“네가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기나 해? 라우라가 죽었어. 자살했다고. 계곡으로 뛰어내렸어. 알아들어? 계곡으로! 그런데 너는 디자이너가 설계한 멋진 부엌에 서서 위스키 잔을 들고는, 네 깔치를 만날 걱정밖에 안 하는군.” --- p.74

빌어먹을 만큼 할 일이 많아서 딸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을 내지 못했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아이의 고민과 걱정을 부담스럽게만 느꼈다. 그러자 딸은 언제부터인가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걱정거리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 p.83

통증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통증이 아니라 죄였으니까. 성직자들이 뭐라고 설교하든, 구원을 얻을 수는 없었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떠났으므로. --- p.83

“아이가 당신이 바라는 착하고 어린 공주님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삶을 산다면서도 스스로 돈은 벌지 못하기 때문에 거절해야 했을까? 우리가 뭐하러 이런 부를 쌓았겠어? 하나뿐인 아이를 위해 쓰지 않는다면 말이야.”
아내가 자제력을 잃고 크게 흐느껴 울었다. 그도 눈물이 터졌다. 둘은 끌어안고 몇 분이나 그렇게 슬픔에 잠겨 있었다. --- p.88

그날 밤 나는… 친구라고 믿었던 이들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그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똑똑히 보았고요. 그들은 되도록 자신에게 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만, 그래서 이 난관을 벗어나려고만 했죠. 하지만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나도 그들과 똑같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어요.” --- p.152

“손가락은 언제나 최전선에 있지. 늘 첫 번째로 투입된다는 뜻이야. 몸의 그 어느 곳보다도 신경 조직이 많아.” 그는 검지 끝을 꼬집었다.
“이 앞은 특히 예민해. 자연이 현명하게도 그렇게 만든 거야. 일종의 경보체계지. 하지만 학대하기에도 좋지.” 남자는 전지가위를 대고 손가락을 잘랐다. --- p.214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 마치 수수께끼 같아. 뭔가 맞지 않아. 그 여자가 정말 성폭행을 당했다면 왜 고소하지 않았지? 친구들과는 무슨 이유로 관계를 끊었을까?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 왜 여기까지 와서 눈보라 치는 계곡을 올라갔을까? 더 간단하게 집에서 술과 약으로도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 p.224

정말 오랜만에 그녀와 이렇게 가까이 있다. 우리를 가로막는 건 싸구려 목재로 만든 가느다란 벽뿐이다. 나는 왼쪽 귀를 벽에 대고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너무 얇아 건너편에 있는 그녀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다. 이성을 마비시킬 듯한 향기도 내 코로 스며든다. 그녀가 방금 사용한 향수가 그녀의 살 냄새와 뒤섞인다. …그녀가 재킷을 벗고 스웨터도 벗는다. 바지 지퍼를 내리고 허리띠를 풀고는 팬티 차림으로 탈의실에 서 있다. 나와 30센티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새로 솟구치는 향기가 이쪽으로 건너와서, 나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마비된다. 나는 양손으로 벽을 쓰다듬으며 벽이 그녀의 몸이라고 상상한다. 내가 이미 한 번 만져보았던, 너무나도 탄탄한 젊은 육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