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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도 8
저자 : 김석범
출판사 : 보고사
출판년 : 2015
정가 : 15000, ISBN : 9791155164686
책소개
제1회 제주 4·3 평화상 수상 작가
일본 마이니치(每日) 예술상 수상작
아사히신문 오사라기지로(大佛次郞)상 수상작
신경숙 사태 이후 한국 현대 문학을 향한 독자들의 실망과 환멸이 깊다. 오늘날 한국 문학의 갱신을 고대하는 독자들에게 문단문학의 비루한 굴레를 압도하는 한민족 문학 최대 문제작 [화산도]를 소개한다. [화산도]는 원고지 2만 2천 장, 20여 년에 걸친 집필 끝에 완성된 재일작가 김석범의 노작으로, 연재 중이었던 1983년에 아사히신문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상을 수상했고, 단행본은 1998년 마이니치(每日) 예술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80년대 후반에 우리말로 옮겨진 바 있으나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화산도]의 진면목을 궁금해 했던 독자들의 오랜 기다림 끝에,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소장인 김환기 교수의 번역으로 최초 완역판 [화산도]가 출간됐다.
목차
조선총독부의 일장기 대신 내걸린 서울 미군정청의 성조기는 내려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왜 저기에 성조기 깃대가 계속 서 있는 것일까? 저건 태극기가 아니고 성조기가 틀림없나? 아니, 성조기로 보이는 건 내 착각일 것이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비현실적인 감각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우리말이 서툰 이 노인이 국수주의와 멸공의 깃발을 치켜들고 민족과 국토를 양분하는 선거를 치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점령군 군법회의에 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사형 또는 기타의 형벌에 처한다. 이방근의 뇌리에 맥아더 포고문 제2호의 결말 분분이 떠올랐다.
난 전쟁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실제로 전쟁터에 끌려가 옥쇄를 각오한 자가 아니면,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어리석은지를 모르는 법이지요. 무엇 때문에 모두들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뭡니까, 지금 강 선생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제주도에서 무장봉기가 시작된다, 즉 무기를 손에 들고 적과 싸운다니까, 그것도 일종의 전쟁입니다.
무장봉기…, 음, 무장봉기란 말이지…. 무장봉기는 장구벌레가 들끓는 물을 마시고, 조밥과 고구마를, 아니 조와 고구마 줄기로 죽을 쑤어 먹는 섬사람들이 일으키는 것이다. 그들은 여차할 때 들고 일어난다. 매일같이 낮잠을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들은 일어난다.
해방된 지 3년, 이렇게 많은 자기 민족의 유혈과 시체를 초석으로 삼으면서 무슨 정부 수립이고 건국 축전입니까. 아니지요, 원래 괴뢰정권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만들어집니다. 해방이고 나발이고,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후 민주주의 같은 것은 이 나라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자력으로 독립과 해방을 달성한 것이 아닙니다.
서울로 이주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본적을 제주도에서 본토로 바꾸어 자신의 고향 땅과 작별을 고하고, 유려한 서울말을 익혀서-이방근은 이에 대해 구역질을 느꼈지만- 변신한다. 제주도가 본적이어서는 ‘입신출세’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넌 ‘친일파’ 아버지를 둔 걸 불행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일제 때 생활을 백 퍼센트 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친일이라면 친일이 아닌 사람이 없을 게다. 이 작은 섬에서 무슨 친일이냐. 큰 악은 서울 같은 육지에 있는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