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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블링블링
<strong>블링블링
저자 : 정수현
출판사 : 링거스그룹
출판년 : 2008
정가 : 11000, ISBN : 9788996193302

책소개


『압구정 다이어리』 정수현 작가의 신작 칙릿 소설. 일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열심인 그녀들을 통해, 새로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힘든 일이지만, 그 힘든 일에 기꺼이 빠지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재발견할 수 있다.

나는 29번째 크리스마스를 두 달여 앞두고, 프러포즈를 할 줄만 알았던 애인에게 이별선고를 받게 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이별을 맞이하게 된 친구 지은과 서정, 이렇게 셋이 홍콩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름하여, 화려한 싱글의 화려한 여행!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지은의 제안으로 한 가지 게임을 하기로 한다. 굉장히 유.치.한. 크리스마스 게임. 크리스마스 이브 날, 우리는 다시 홍콩에 오기로 한다. 그것도 각자의 새로운 남자를 데리고! 그리고 우린, 가장 근사한 남자를 데리고 오는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넘기기로 하는데...

목차


그래, 마지막 20대에 마지막 이별이야. 오케이?? 대신 이 마지막 이별을 한껏 슬퍼해 주마. 그리고 난 내일부터 일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 줄, 그리고 나에게 마놀로블라닉 구두와 베라 왕 드레스를 줄 수 있는 근사한 남자를 찾는 데만 열중할 것이다. --- p.20

만약 그가 게이라면 아까운 니 시간들을 허비할 순 없잖아? 우린 이제 한 남자를 오래 관찰할 정도로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고. 아니다 싶음 패스, 패스, 패스. 그래야 하는 나이야. 게다가 우리의 크리스마스 내기를 잊은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근사한 남자라도 게.이.라면 탈락이야. --- p.34

만약 그를 홍콩에 데리고 간다면, 내가 그 게임의 우승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맙소사. 원래 인연이란 게 다 그렇잖아? 그리고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남녀 주인공들은 꼭 엉뚱하게 만나더라고.(중략)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유혹이라는 것 말이야. 그리곤, 꼭 저 남자로 크리스마스 게임의 승리를 거머쥐겠어. 그러니 그의 황당무계한 시추에이션도 과감하게 넘어가야 한다. 이건 어쩜 첫 스테이지의 시작인 것이다. --- p.41, 47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는, 그러니까 지금 남자와 키스를 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은 얼마 전!! 홍콩에서의 화이트 셔츠, 다시 말해 지금 서정의 애인, 며칠 전 서정과 섹스를 해 게이라는 우리의 오해를 씻어버렸던 그 남자!였던 것이다. 맙소사. 정말? 나는 지은의 남편과 아라의 모습을 목격했을 때와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시현아, 왜 항상 너만 이런 장면을 목격하는 거니? --- p.55

여전히 크리스마스는 설렌다. 아기자기한 케이크와 트리, 그리고 불빛. 상상만으로도 황홀해질 것 같았다. 아, 역시 여자는 로맨스에 약한 동물이다. 하지만 아마도 세상의 많은 여자들은 나 같은 거짓말을 하고 다닐 것이다. ‘크리스마스 따위 기대하지 않아요’라며. 그러나 이 말은 곧 ‘크리스마스에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란 말과 같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남자가 알고 있을까? 과연 알고 있기는 한 걸까?. --- p.78

“난 이제 곧 서른이고 그 사람은 내년이면 서른셋이야. 아무튼 둘 다 결혼적령기라면 적령기고, 늦었다면 늦었다고 할 수 있는 나이였지.” 결혼적령기라. 나는 30이라는 숫자를 생각했다. 제길, 이런 기준은 누가 정해 놓은 거야? --- p.89

일을 마치고 바로 온 그는, 은색 빛이 도는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넥타이는 하고 있지 않았다. 뭐, 넥타이가 있든 없든 그는 여전히 근사하고 멋있었다. 하지만, 난 결코 그와 사랑에 빠지는 위험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 왜냐면, 지금 이건 현실이니까. 현실은 드라마에서처럼 해피엔딩일 때 끝나지 않는다. --- p.98

정말 듣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원나잇을 하지 않았다. 그건 이 근사한 남자와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무감각한 섹스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남자와……. 맙소사. 난 위험경고를 느꼈다. 절대 사랑은 안 돼. 이 남잔 결혼할 생각도 없는 남자라고. --- p.104

“저번 주 이야기 좋더라. 공감했어. 우리 나이면 애인과 헤어졌을 때 안타까운 건 두 가지잖아. 그에 대한 추억과 당분간 섹스할 상대를 찾지 못하는 것. 한마디로 간지러운 곳을 긁어줄 사람이 없어진 여자의 심리. 그 부분을 잘 묘사해 줬더라.” 역시 그녀다. 칼럼을 쓴 작가가 눈앞에 있는데 어쩜 저렇게 시니컬하게 말할 수 있지? 다행히 칭찬뿐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쁘기만 한 것도 아닌 이런 기분은 뭐지? --- p.117

“당연하지. 그런 나쁜 자식 다신 안 만나.” 난 힘주어 대답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묘한. 그러니까 마음 한구석에선 ‘만일 그가 나에게 다시 온다면……?’이란 생각이 자꾸만 맴도는 게. 하지만 이건 분명 미련이다. 그리고 미련을 오래 끄는 사람은 정. 말. 로. 미련스런 사람이다. --- p.128

“자기, 어디 갔었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게이클럽에서 둘의 모습은 완벽한 연인이었다. 이럴 거면 왜 서정에게 접근한 거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던 서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시작을 말지!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거냐고! --- p.143

“패션쇼는 안 좋아하지만, 시현 씨는 좋은 것 같아요.” 지금 이게 무슨 뜻이지? 내가 통화하던 사람은 분명 이정민이 맞는데? 지금 이 말, 이정민이 한 말이야? 나는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아, 정리가 안 되고 있어. “어디예요? 제가 데리러 갈게요.” 맙소사. 지금 이게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면, 신은 분명 있는 거다! 그리고 그 신은 친구를 위해 선한 일을 한 내게 선물을 내려주신 게 틀림없었다. --- p.153

맙소사. 그는 건우였다. 강. 건. 우. 스물아홉에 한 번쯤은 겪는 일 중 쿇나가 더 있다. 헤어졌던 누군가가 다시 찾아오는 일. 하지만, 그런 일은 경우에 따라 좋은지 안 좋은지 헷갈릴 때가 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오늘은 내가 기꺼이 사랑에 빠지기로 결심한 날이고, 또 그 사랑에 혼돈이 생긴 날이다. 만일 사랑에 빠지기로만 했다면 난 이 사람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겠지만, 혼돈이 생겼으니 그의 등장에 나는 또 다른 혼란에 빠지고 만다. 더군다나 그가 이렇게 초라하고 불쌍한 포즈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 p.172

우리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세계를 동경하지만, 결코 그들이 될 수 없다. 왜냐? 그녀들이 사는 곳은 미국 뉴욕의 맨해튼이고, 우리가 사는 곳은 아직까지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를 쿨하지 못하게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나에게 다시 돌아온 건우를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고, 나와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옛 여자친구와 호텔에서 함께 있었던 이정민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래, 어쩜 그녀는 ‘옛’ 여자가 아닌 ‘보류’ 상태의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나만 그 속에서 바보가 된 거지. --- p.177

우리는 미드를 원하지만 미드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들과 완벽하게 동일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우정. 분명, 서정은 오늘 강의 몇 개를 펑크 내고 왔을 것이다. 그건 지은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녀들에게 내가 벌인 작은 에피소드는 최고의 걱정거리였을 것이다. 지은과 서정이 오늘 보여준 우정은 「섹스 앤 더 시티」나 「위기의 주부들」, 「가십걸」의 그녀들과도 비교할 수 없다. --- p.200

추억이란, 이별 후에는 버려진 종이만큼이나 쓸모가 없다. 아니,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데 피해만 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추억이란 것을 소중히 여긴다. 이렇게 아이러니가 넘치는 복잡한 현실이다. --- p.217

뉴욕도 홍콩도 아닌 이곳도 나에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난 20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만큼은 꼭 그녀들과 보내고 싶었다. 내 20대를 한껏 빛내주었던 그녀들과 말이다. 분명 그녀들도 이렇게 모이기 위해서 포기한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그 무엇인가를 더 소망하지는 않았다. --- p.234

난 결심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처럼, 당당하게 겁먹지 않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로. 내게 다가올 서른이란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그리고 그 누구보다 멋지고 특별한 여자가 되기로 말이다. 이런 말이 있다. 10대에는 모든 여자들이 아름답고, 20대에는 아름다운 여자들이 아름답고, 30대에는 특별한 여자가 아름답다. 난 특별한 서른을 맞이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