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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 하
망량의 상자 하
저자 : 교고쿠 나츠히코
출판사 : 손안의책
출판년 : 2005
정가 : 14000, ISBN : 9788990028327

책소개


『우부메의 여름』의 작가 교고큐 나츠히코의 미스터리 2편.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고 단서를 수집하는 등 ‘발로 뛰는’ 고전적 탐정들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회색 뇌세포’를 십분 활용해 사건을 해결하는 소위 ‘안락의자 탐정’교고쿠도. 늘 시무룩한 얼굴로 어려운 책만 읽고 있는 그는 장서가 넘쳐나서 어쩔 수 없이 파는 고서점 주인으로, 거의 두문불출 상태다.

그에게 다녀가는 삼류소설가 세키구치, 삼류잡지기자 도리구치, 간판만 탐정인 에노키즈, 멀쩡한 형사인 기바 등이 각자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그는 그저 듣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모두가 아는 정보에서 그 이상의 정보를 얻고, 드러나지 않았어야 할 비밀이나 법으로는 처단할 수 없는 악행까지 간파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는 결코 쉽게 사건의 본질을 친구들에게(그리고 독자들에게) 털어놓지 않으며, 언뜻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초능력자와 영능력자와 점술사와 종교가의 차이’ 나 ‘토막 살인을 저지르는 용의자의 심리’ 따위의 장광설을 추리소설 단편 하나에 맞먹을 정도의 페이지 동안 주절주절 떠들어댈 뿐이다. 하지만 사건이 풀려나가면서 그가 어째서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그토록 집요하게 되풀이했어야 했는지, 그리고 ‘알고’보는 사실과 ‘모르고’ 보는 사실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목차


도시를 떠나는 귀성열차는 비어 있었다.
이 차량에는 지친 노파가 한 사람 타고 있을 뿐이다.
휴일도 아닌데 시골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 보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다.
차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좋게 이마와 뺨에 닿는다. 희미하게 고향 냄새가 났다. 정말 기분이 좋다.

연일 이어진 과로 때문에 완전히 잠들고 말았다.

정신없이 자면서 옛날 꿈을 꾸다가 깨어 보니, 어느새 앞좌석에 한 남자가 있었다.
피부가 희고, 젊은 건지 늙은 건지 알 수 없는 남자였다. 몹시 졸린 듯한, 인형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 뭐가 좋다고 여기 앉은 걸까?
곰곰이 그런 생각을 한다.

남자는 상자를 들고 있다.

몹시 소중한 물건인 듯 무릎에 올려놓고 있다.
가끔 상자에 말을 걸기도 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맞혀 보려고 하지만, 너무나도 졸렸다.
항아리나 꽃병이라도 들어 있는 걸까?
크기도 딱 적당한 상자다.
남자는 가끔 웃기도 한다.

“호오.”
상자 속에서 소리가 났다.
방울이라도 굴러가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