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검색
본문
Powered by NAVER OpenAPI
-
-
더 잡
저자 : 더글라스 케네디
출판사 : 밝은세상
출판년 : 2013
정가 : 14500, ISBN : 9788984371262
책소개
비즈니스세계는 정글, 살아남는 자가 승자다
전 세계 30여 개국 출간! 아마존 프랑스, 아마존 영국 베스트셀러
《빅 픽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매혹적인 반전 스릴러
《빅 픽처》를 비롯해 출간하는 소설마다 뜨거운 관심과 함께 독자들을 흥미진진한 세계로 이끄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장편소설이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으며 영국에서는 나오는 책마다 뜨거운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2011년에는 [빅 픽처], [파리5구의 여인]이 영화로 제작되어 크게 주목받았다.
네드 앨런은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 수 있을 만큼 능력이 뛰어난 세일즈의 귀재이다. 그가 근무하는 잡지 《컴퓨월드》는 업계의 후발업체이지만 1,2위 업체인 《PC글로브》와 《컴퓨터아메리카》의 아성을 위협할 만큼 고성장을 이룬다. 잡지의 주 수입원은 광고수주이고, 네드 앨런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최고의 세일즈맨으로 통한다. 회사에서도 우수한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3년 만에 팀장 자리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지만 적대적 M&A를 통한 회사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비열한 음모의 희생양이 된다.
맨해튼의 비즈니스세계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구조조정, 빅딜, 적대적 M&A, 정리해고, 명예퇴출 등의 말들이 한창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9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뉴욕은 비싼 주택 임대료, 고물가 등으로 보통의 샐러리맨이라면 생활하기조차 힘겨운 곳이다. 21세기 문화와 유행을 선도한다는 뉴욕에서 네드의 삶은 끝 모를 추락을 경험한다.
기댈 곳이 없는 네드는 고교 동창생 제리가 내미는 손을 덥석 부여잡을 수밖에 없다. 약자는 늘 제대로 된 항변 한번 못해보고 추락하기 마련이지만, 네드는 약자로서의 추락을 거부한다. 강자의 무자비한 횡포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거듭하던 네드는 마지막 순간에 반전카드를 움켜쥐게 된다.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치밀한 구성으로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시선을 한시도 놓아주지 않는다.
목차
사무실을 나가면서 데비의 자리를 지날 때 특유의 속사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요, 알아요, 알아요! 일단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컴퓨월드》지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매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죠, 아니죠, 아니죠. 당연히 다들 자기네 매체가 제시하는 조건이 최고라고 우기겠죠. 그런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자, 차분하게 생각해보세요. 화요일 저녁 일곱 시면 저도 퇴근해서 아이랑 놀아야 할 시간이거든요. 이런 시간에 제가 왜 전화통을 붙들고 앉아서 이런 말씀을 드리겠어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이런 말씀을 못 드리죠. 어떤 도움이냐? 육 개월 동안 사분의 일 페이지 광고를 여섯 번 내드릴게요. 단가도 특별 디스카운트해서 오만이천오백 달러에 드릴게요.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풀 페이지 광고는 한 페이지에 삼만오천 달러죠. 그렇지만 사분의 일 페이지 광고는 하나에 일만 달러입니다. 지금 왜냐고 물으셨어요? 아시잖아요. 사분의 일 페이지 광고라고 해서 가격이 일 페이지 광고료의 사분의 일인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죠. 그런 경우는 전혀 없어요. 십 퍼센트를 더 내야 하죠. 어디나 다 그렇지만 저는 다르죠. 풀 페이지 광고료의 딱 사분의 일 가격으로 해드릴게요. 한 번에 팔천칠백오십 달러죠. 그러면 절약되는 금액이……. 어머, 계산이 정말 빠르시네요. 이제 계산기에 ‘곱하기 6’을 눌러 보세요. 그렇죠, 칠천오백 달러를 절약하실 수 있어요. 그야말로 특별한 디스카운트죠.
--- p.22~23
밸런타인은 엄청난 실패를 겪고도 다시 일어섰다. 그는 요즘 여러 토크쇼에 단골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었고, 3천 석이나 되는 회의장을 관객으로 가득 채우는 인기 강연자였다. 서점 쇼윈도마다 밸런타인의 얼굴이 담긴 책이 깔렸다. 물론, 뉴욕의 엘리트들은 밸런타인의 컴백을 한낱 조롱거리로 삼았다. 밸런타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엇갈리는 게 사실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파트룬] 같은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한곳에 모으는 사람이었다. 내 눈에는 밸런타인이 진정한 힘을 가진 인물로 보였다.
밸런타인 옆에는 검은색 슈트를 입은 남자 두 명이 뒤따랐다. 가방을 든 사람은 밸런타인의 비서인 듯했다. 다른 한 명은 경호원이 분명했다. 그가 레스토랑에 안에 있는 손님들 모두를 눈으로 쭉 훑어보았기 때문이다.
밸런타인은 에드가 브론프먼의 자리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시그램 상속자인 에드가 브론프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손으로 밸런타인의 손을 잡고 인사했다.
이안이 말했다.
“저 가방을 든 남자 보이지? 밸런타인이 저 남자를 시켜서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돌아다니며 자기계발 테이프를 팔게 할 거야.”
지나가 나직이 속삭였다.
--- p.73
턱을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움찔했다. 이반도 내가 움찔하는 걸 알아챈 듯했다.
“대장, 정말 죄송해요. 제가 얼마나 죄송해하는지 모르실 거예요.”
이반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나는 차분하게 달래듯 말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봐요.”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두세 달 동안 [GBS] 광고 팀에 있는 테드 피터슨 이사와 관계를 돈독하게 쌓아 왔어요. 어제는 4월호에 여섯 페이지짜리 특별광고를 싣기로 약속하고 테드 피터슨과 악수까지 나누었어요. 오늘 아침, 계약서를 챙겨들고 사인을 받으러 가는데 갑자기 테드 피터슨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그가 말하길 ‘미안하게 됐습니다, 갑자기 저희 회사 마케팅 전략이 변경됐어요. 당분간 광고 계획은 없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마터면 고속도로에서 탈선할 뻔했어요.”
--- pp.112~113
아내가 내 말을 끊었다.
“한 번에 한 가지씩.”
나는 생각했다.
‘지금은 말을 잘 골라서 할 때야.’
나는 아내에게 키스하고 어깨에 팔을 둘러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당신 말이 맞아. 한 번에 한 가지씩.”
네비스 섬의 햇빛 아래에서 우리는 마음껏 게으름을 피웠다. 10시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고, 해변을 오래도록 산책했고, 저녁에는 침대에서 빈둥거리다가 바다가재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하루하루가 물 흐르듯 지나갔다. 잘근잘근 씹혀 사라졌던 손톱이 다시 자랐다. 곤두섰던 신경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팀원들 모두가 내 휴대전화 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벨은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우리 부부사이는 다시 평화로워졌지만 아내는 가끔씩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우리는 샴페인 한 병을 따 새해를 축하했고, 술에 취해 비틀대며 해변을 거닐었다. 모래밭에 누워 따뜻한 바닷물이 몸을 적시게 내버려두기도 했다. 저녁에는 해변에 누워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내가 해변에 누운 채 말했다.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그래.”
--- pp.194~195
버트는 복도와 통로를 끊임없이 서성거렸다. 군대에서 신병훈련을 맡은 교관처럼 수시로 직원들을 윽박지르고 자존심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걸 임무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를 보고 있자면 어린 시절 급우들에게 당한 분풀이를 직원들에게 대신 하는 사람 같았다.
“앨런 씨, 귀먹었어요? 오늘아침, 다른 세상이라도 헤매고 있어요?”
나는 내 자리에서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내 주변의 동료들은 모두들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버트가 직원을 콕 집어 괴롭힐 때면 그 주변사람들은 모두들 그렇게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눈길을 돌렸다가는 괜히 불똥이 튀기 때문이었다.
“못 들었습니다.”
“귀먹었군요.”
“일에 집중하느라…….”
“한 번만 더 묻죠. 우리 회사 출근 시간이 몇 시입니까?”
나는 나직이 말했다.
“여덟 시 반.”
“잘 알고 있군요. 여덟 시 반까지 책상에 앉고, 늦어도 여덟 시 사십오 분에는 첫 전화를 걸어야 합니다. 앨런 씨는 오늘 몇 시에 출근했죠?”
“여덟 시 반쯤.”
“아뇨! 정확히 말해 여덟 시 삼십육 분에 도착했습니다. 그럼 몇 분 늦었죠?”
“지하철이 연착했습니다. 34스트리트에서 누군가 지하철로 뛰어들었다더군요. 그 사람이 우리 회사 직원은 아닌지 몰라.”
내 말에 옆자리 동료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버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자 사람들은 즉시 컴퓨터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버트가 전쟁을 선포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버트가 내 자리로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코미디언이신가?”
--- pp.272~273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예전 성격을 찾으세요. 이 레즈비언 형사가 보석 같은 진리를 한 가지만 더 알려드리죠. 지금은 부인이 원하는 만큼 자유를 누리게 내버려두세요. 여자들은 안달복달하는 남자를 가장 싫어하죠. 지금 부인에게 매달리면 끝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나는 캐스터 형사의 충고를 머릿속 깊이 새기고 근처의 메리어트호텔에 체크인했다. 캐스터 형사가 추천한 호텔이었다. 밤 10시였다. 나는 침대에 누워 집 전화의 자동응답기를 확인했다. 아내가 남긴 메시지는 없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아내의 사무실로 전화했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아내의 비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번 메모는 금요일에 전했는데 지사장님이 어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오늘 카멜에서 곧장 샌프란시스코로 가신다고 했습니다. 저녁까지 약속이 잡혀 있어 로스앤젤레스에는 내일쯤 돌아오실 예정이랍니다. 혹시 전하실 말씀이라도?”
“없어요.”
--- p.306
“감정에 대해 사과할 필요는 없어. 감정은 솔직하고 올바른 거야. 자네의 감정이 상실과 후회의 느낌이 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야. 상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장을 경험할 수 없어. 성장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긍정적인 변화는 늘 성공을 낳개 돼 있어. 자네는 이제 상승기류를 탄 거야. 그러니까 결혼이 깨어질지도 모른다는 상실감에 휩싸일 때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 ‘고통을 각인하는 것이야말로 다시 성공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더없이 절박한 상황에 처할 경우 아이러니를 다 잊고 평소라면 비웃을 이야기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된다. 밸런타인의 말은 지나치게 추상적일 뿐이었지만 감정적으로 무방비상태였던 내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이었다. 밸런타인은 내가 듣고 싶어 한 바로그 말을 들려준 것이었다.
밸런타인은 역시 대가다웠다. 그는 내가 심하게 버림받은 기분에 빠져 잔뜩 겁먹은 어린아이, 갑자기 거대하고 악한 세상에 홀로 버려져 아빠를 절실히 찾는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