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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이것이 인간인가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저자 : 프리모 레비
출판사 : 돌베개
출판년 : 2007
정가 : 12000, ISBN : 9788971992647

책소개


이 책은 레비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하다가 파시스트 군대에 체포되어 포졸리 임시수용소로 이송되던 1943년 12월부터 러시아군에 의해 아우슈비츠가 해방되던 1945년 1월까지의 일들이 담겨 있다. 각 장은 하나의 주제를 두세 개의 에피소드와 등장인물 묘사를 통해 예리하게 전개해나간다.

인간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모든 평범하고 사소한 습관과 사물들이 제거된 수용소에서는 수인들이 하루하루 좀비처럼 변해간다. 그들은 기계 부품처럼 죽어가고 또 그만큼 금방 채워 넣어진다. 그곳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에 의해 제거되며, 살아남는 자들은 나름의 책략을 마련한다.

형제애나 동지애는 없지만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하고 수급하기 위한 지하경제는 원활히 돌아가며 그 주된 동력은 절도와 사기다. 그는 자신이 목격하고 감내한 공포를 세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특유의 절제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극한의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존엄성과 타락의 과정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목차


역사를 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진지한 문학적 답변

프리모 레비의 작품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요소는 바로 그 역사적 중요성이다. 레비의 작품은 흥미롭고 아름답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현대 역사의 가장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장면에 관한 증언으로서 가장 빼어나다. 레비는 젊은 독자들에게 자신이 이야기가 왜 기억되어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불관용·압제·예속성 등을 내포한 새로운 파시즘이 이 나라 밖에서 탄생해 살금살금, 다른 이름을 달고 이 나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혹은 내부에서 서서히 자라나 모든 방어장치들을 파괴해버릴 정도로 난폭하게 변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지혜로운 충고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다. 저항할 힘을 찾아야 한다. 이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유럽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기억이 힘이 되고 교훈이 될 것이다.(『이것이 인간인가』 「부록1」 중에서)

레비의 작품은 개인의 경험을 다루면서도 줄곧 목격자·증언자로서의 거리를 유지하며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담아내고, 인간의 파괴와 파멸에 관한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고찰을 증류해낸다. 그는 결코 고통을 전시하지 않는다. 그것의 근본적인 조건을, 그 생생한 상황을 목격하고 기록할 뿐이다. 철저하게 냉정하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가장 생생하고 가장 가슴 아프게. 그럼으로써 그의 작품은 우리가 지금 다시 아우슈비츠를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유대인을 동정하기 위해서나 독일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생존자를 칭송하기 위해서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고통을 인간의 차원으로 보편화하여 우리의 역사적 상처로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게다가 애초에 그가 목격한 광기와 폭력의 본질은 개인적 분노를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정확히 표현했듯이, 사악한 한 마리 괴물에게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선량하고 순종적인 시민들의 집합적 힘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은 대개 비정상적이거나 어리석거나 잔인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환영받았고 그들이 죽을 때까지 수백만의 추종자들이 그들을 따랐다. 비안간적인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한 사람들을 포함한 이런 추종자들은(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타고난 고문 기술자들이나 괴물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위험하다. 아이히만이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었던 회스, 트레블링카 수용소 소장이었던 슈탕글, 20년 뒤 알제리에서 학살을 자행한 프랑스 병사들, 30년 뒤 베트남에서 학살을 자행한 미군 병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만일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훨씬 더 단순명쾌했을 것이다.” 토도로프의 말이다. 레비는 작품 전반을 통해서, 또 그 죽음을 통해서까지 ‘역사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역사를 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들을 던져준 셈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의 증언이다. 이 책은 개인적인 체험기로도 뛰어나지만, 그 틀을 넘어서 더 근본적이고 보편적으로 현대 ‘인간’ 그 자체의 위기를 증언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책은 과거에 잔혹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증언이 전달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섬뜩한 위기에 대해서도 증언하고 있다.(『이것이 인간인가』 「작품해설」 중에서)

이러한 레비의 치열하고 섬세한 성찰은 과거의 기억, 역사의 해석을 두고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립과 갈등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