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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알렉스
저자 : 피에르 르메트르
출판사 : 다산책방
출판년 : 2012
정가 : 14800, ISBN : 9788963708980

책소개


피에르 르메트르. 대학에서 프랑스문학과 영문학을 가르치는 55세의 대학교수인 그는 어느 날 돌연 써내려간 한 편의 소설 『세밀한 작업』으로 2006년 코냑 페스티벌 신인문학상을 거머쥔다. 이후 발표한 『웨딩드레스』, 『사악한 관리인』(출간 예정)으로 2009 미스터리 문학 애호가상, 몽티니 레 코르메유 불어권 추리소설 문학상, 2010 유럽 추리소설 대상 등을 받으면서, 등단 후 연이어 발표한 세 작품이 모두 문학상을 수상하는 이례적인 이력을 쌓았다.

『알렉스』는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 3부작’ 시리즈 중 『세밀한 작업』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작가의 최신작이자 국내 첫 출간작이다. 이 작품은, 한 젊은 여성이 파리 한복판에서 괴한에게 납치된 후 알몸으로 허공의 새장에 갇히는 사건을 시작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의 과거 행적을 파헤치는 카미유 베르호벤의 수사와 끔찍한 연쇄살인이 영화의 교차편집처럼 번갈아 진행된다. “히치콕이 살아 있다면 영화화하고 싶어할 작품으로 완성시키는데 주력했다”고 밝힌 저자의 필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작품에서 주목할 또다른 점은 바로 여주인공 ‘알렉스’이다.

목차


카미유는 정말로 작다. 상상해보라, 성인 남자의 키가 1미터 45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모습을. 그러니 그는 세상을 열세 살 소년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런 발육부진에는 모친의 책임이 크다. 모드 베르호벤, 저명한 화가. 그녀의 그림들은 열 곳이 넘는 국제 미술관의 카탈로그에 올라 있다. 대단한 예술가인 동시에 담배 연기를 영원한 후광처럼 두르고 살다시피 했을 만큼 엄청난 애연가이기도 했다. 이 푸르스름한 뭉게구름과 함께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상상한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가장 주목할 만한 카미유의 두 가지 특성에는 이러한 모친의 영향이 크다. 우선 예술적 자질에 미친 영향이 있다. 그는 일찍부터 그림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문제는 골초인 모친이 끼친 신체적 악영향이다. 태중에서부터 시작된 영양장애성 발육부진으로 인해 그의 키는 다 자란 후에도 고작해야 1미터 45센티미터에 불과하도록 억눌렸다. ---p.24

르 구엔 서장의 덩치는 동상만큼이나 우람하다. 그는 과체중의 비만이다. 그가 정확히 몇 킬로그램이나 나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결코 자기 몸무게를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120킬로그램쯤 될 거라 예상하는 이들도 있고, 130킬로그램이 넘을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르 구엔 서장의 몸은 햄스터와도 같이 쭉 늘어진 턱살과 더불어 비대하고 육중하다. 하지만 총명한 시선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꽤 해박한 남자다. 게다가 여자들은 서장이 성적으로 꽤 끌리는 타입이라는 사실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이 불가해한 면에 특히나 남자들은 어리둥절해한다. ---p.25

“그러니까 선생은 여기 있었다는 건데, 범행 현장과 얼마나 떨어진 거리죠?”
그의 시선은 목격자를 추궁하고 있다.
“……글쎄요, 한 40미터 정도?”
그래, 사내는 자신의 짐작에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당신은 불과 4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서 한 여자가 무뢰한에게 무자비하게 두드려 맞다가 납치당하는 것을 본 셈이로군요. 그런데도 당신이 한 일은, 대단히 용감하게도, 소리를 지른 게 고작이었습니다.”
---p.40

“사람이 앉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는 상태로 견뎌야 하는 새장이라.”
“그 체형이 처음으로 고안된 것은 루이 11세 치하였어요. 제가 알기로는 베르됭주교를 징벌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는 거기서 10년 넘게 갇혀 있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효력이 강한 일종의 소극적 고문이지요. 뼈마디는 물러지고 근육이 극도로 위축되는데… 나중에 가면 결국 누구든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군요.” ---p.125


알렉스의 삶이 여기 잠들다. 불행한 여자, 곧잘 계획적이면서도 나약하고, 고혹적이면서도 자멸의 충동에 시달리는, 경찰이 아무리 수사망을 넓혀도 결국 미지의 인물로 남아 있는 살인범, 거대한 이 밤의 여인 알렉스. 흘릴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알렉스. 그녀는 지금 단호한 걸음의 리듬에 맞춰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호텔에 도착한다. 자기 방으로 올라간 그녀는 옷을 다 벗어 던진 후, 샤워기의 뜨거운 물줄기 아래 온몸이 녹아내린 듯 쭈그려 앉는다. 수온은 꽤 뜨겁다. 그토록 뜨겁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속에서 그녀는 입을 한없이 크게 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