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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의 털 (제6회 사계절문학상 수상작)
저자 : 김해원
출판사 : 사계절
출판년 : 2008
정가 : 9500, ISBN : 9788958283065
책소개
제6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기구한 머리털 이야기의 재미가 시작된다. 머리카락 이야기 하나에 학교 두발 규제와 관련한 청소년 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주인공 일호의 가족사, 우리 사회와 역사까지 모두 들어 있다. 남자아이들의 이야기를 힘 있게 그려냈으며,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평범해 보이지만 독창적인 캐릭터, 은근한 유머가 더해진 감칠맛 나면서도 정갈한 문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이 책의 주인공 일호는 주인공이 되기에는 너무나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머리털을 사수하기 위한 긴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만의 단순한 머리털이 아니라 대한민국 열일곱 살들의 머리털이다. 모범생 일호가 두발 규제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을 때, 일호와 마찬가지로 한 번도 싸워 보지 않았던 할아버지 역시 외로운 투쟁을 시작한다.
저자는 일호의 싸움과 궤를 같이하며 또다른 싸움을 치루는 할아버지를 통해서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아온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처음으로 세상과 맞선 뒤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제 자리를 다시 찾아가게 되는 열일곱 살 일호의 자아 찾기, 우리 사회와 역사 의식까지 하나에 담고 있는 소설이다.
목차
열일곱 살이 되는 날 아침, 나는 날이 바짝 선 가위 앞에 앉아야 했다. 아침 내내 숫돌에 무뎌진 날을 갈리며 풀벌레처럼 울던 가위의 민날은 시퍼렇게 되살아나 입을 꾹 다문 채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위의 두 민날이 내 정수리 위에서 서로 교차하며 머리카락 끝을 앙칼지게 자르는 순간, 나는 추운 날 오줌을 쏟아 낸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 p.5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가슴으로 느낀 것은 예닐곱 살 때였다. 그 때만 해도 태성이발소에는 내 또래 사내아이들이 아버지 손을 붙잡고 왔다. 아이들은 제 아버지 앞에서 머리를 깎았고, 아버지들은 마치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치르는 양 엄숙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 이발소 낡은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한글 쓰기나 수학 학습지 따위를 풀던 나는 크는 것을 확인해 줄 아버지가 없어 영영 어른이 되지 못할까 봐 겁났다. --- p.11
매독이 악을 쓰며 밀어뜨리고 닥치는 대로 발로 걷어차도 나는 내 손아귀에 있는 손목을 놓지 않았다. 나는 미친개를 물어뜯는 단단히 미친 개였다. 엄마 나, 단단해진 것 맞나요? 나는 속목이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릴수록 더 다부지게 파고들었다. 매독은 발길질을 하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를 손목에 매단 채 잡아끌면서 온갖 욕을 퍼부었다.
“이 개새끼!” --- pp.50~52
그런데 일호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바로 그 순간에, 느닷없이 17년 동안 부재했던 일호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햇빛이 거리를 환하게 비추기 시작하던 여름날 아침” 손님 맞을 채비를 하다가 “갑작스레 이발소 문을 열고 거리로” 나온 뒤, 그 길로 먼 여행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