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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제1고등학교
저자 : 전성희
출판사 : 자음과모음
출판년 : 2017
정가 : 12000, ISBN : 9788954438049
책소개
통일은 반드시 해야 할까? 통일이 되면 우리에겐 어떤 문제가 생길까?
만약 우리가 북쪽 청소년과 같은 학교를 다닌다면?
‘통일’에 대해서 청소년들은 도덕, 윤리시간에도, 사회, 역사 시간에도 배운다. 그러나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 오랫동안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청소년들에게 통일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면 ‘꼭 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이라 답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실에서 통일이란 우리가 손해 보는 것이라는 생각, 낯선 문화와 낯선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민족’이라는 추상적 내용은 우리에게 오히려 통일에 대한 두려움만을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도 우리와 같은 청소년이 있고, 그들에게도 학교와 학급 회장,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통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좀 바뀌지 않을까.
『통일한국 제1고등학교』는 ‘북한 청소년’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통일 이후 우리와 그들이 어떻게 만날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우리에게 구체적인 현실로 통일을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전성희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통일을 쉽게 생각해보자고 한다. 만약 우리가 북쪽 청소년과 같은 학교를 다닌다면?
이야기는 통일한국 남북통합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첫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시작한다. 남북통합 고등학교의 전교 회장은 남쪽 학생이 되어야 할까, 북쪽 학생이 되어야 할까? 아니, ‘통일’ 학교에서 남북을 따져야 하나? 통일 후 일어날 여러 문제점과 갈등, 남과 북이 아니더라도 쉽게 일어나는 분열과 분란에 대한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왜 우리에게 ‘통일’이 필요한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이해를 다루는 측면에서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재미와 감동 그리고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목차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통일이 된 지 10여 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남과 북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북쪽 사람들의 불만이 우려됐지만 독일 통일을 지켜봐 온 남한 정부는 바로 이루어지는 통합은 지옥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북한의 경제 수준을 어느 정도 끌어올린 뒤 진정한 통일을 이루자는 방침에 따라 ‘선 통일 후 통합’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곳이 ‘통일시’로 통일한국에서 유일한 남과 북의 통합 도시이고, 그 안에 위치한 고등학교가 통일한국 제1고등학교다.--- p.8~9
이 학교에 오면서 처음으로 한 반에서 수업을 듣게 된 남북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38선을 가진 것처럼 넘지 않는 감정 경계선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한민족보다는 외국인처럼 느꼈다. 남자 아이들에 비해 경계심이 덜한 여자아이들이 학기 초 말을 섞기도 하고 서로 어울려 다니기도 했지만 이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거리를 둔 채 지내게 되었다. 그들을 가로막는 장벽은 역시 닮은 듯 다른 언어와 문화였다.--- p.16
“우리 1학년은 총 105명이고, 그중 56명이 북쪽 사람이야. 근데 50명도 안 되는 남조선 후보는 셋이나 나왔는데, 우린 단 한 사람도 나서지 않았어. 남조선 애들이 이걸 어떻게 생각하겠어? (……) 우리를 무시하고 얕잡아 봐도 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야. 얼마나 못났으면 후보로 나올 엄두도 못 내겠냐고 생각하지 않겠어?”--- p.26~27
북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싸움의 원인과 가해자는 강철민이 되어야 했다. 남한 국적인 강철민은 남쪽 사람들에겐 영원히 북한 사람, 탈북자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강철민이 처음부터 자기는 북조선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부모님도 그런 강요를 한 적 없다. 대부분의 남쪽 사람들이 강철민을 북한 사람으로만 볼 뿐이어서 북조선을 이탈하고 나서 뼛속까지 북쪽 사람이 되어버렸다. --- p.30~31
“박영민, 이번이 기회야. 지금 나가면 엄청나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남쪽 후보는 셋이나 나왔어. 표가 3등분 될 거고, 우린 모두 널 뽑을 거야.”
(……) 박영민을 보는 아이들의 눈엔 기대와 희망이 가득 담겨있었다. 박영민을 둘러싼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최대철이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린 100 프로라고! 이거 나가면 바로 당선이잖아!” --- p.31~32
열아홉 살에 남한으로 온 최희숙 선생은 여섯 살 된 동생이 기차에서 떨어져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 부모님이 한 달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자 기차를 타고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달덩이처럼 유난히 하얗고 포동포동하던 아이는 점점 앙상하게 말라갔고 결국 그런 죽음을 맞았다. --- p.51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학교에선 미래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공부 잘하는 놈들이 최고다.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공부를 잘하거나 집에 돈이 많으면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나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 p.69
자본주의 국가인 남조선은 엄청나게 잘 사는 나라임에 분명했지만 사람들이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고 병원비를 걱정했다. 또 북조선에선 집이 무료로 제공되지만 이곳에선 집 한 채를 갖기 위해 몇 십 년의 월급을 모아야 한다고 한다. 이곳은 나라가 아무리 돈이 있어도 국민이 돈이 없으면 죽을병에 걸려도 치료해 주지 않는 곳이었다. 엄마와 누나도 이렇게 돈 많은 나라에서 국민을 상대로 왜 돈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어 했다. --- p.73
“선거에 있어서 중요한 건 공약이야. 북이니 남이니, 국가나 사상 가지고 달려들면 답이 없지. 그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정치놀음에만 관심 있는 정치가들이 하는 짓이고 너와 아이들이 바라는 학교가 어떤 모습인가, 그게 중요한 거지.” --- p.82
“이 일이 남자들끼리 해결하고 결정할 일이라고? 잘 들어라, 여자도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유권자야. 우리를 빼고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겠다고?”
강철민과 최대철이 리수연을 노려보았다. 리수연은 그 눈빛에서 너무도 깊은 적대감이 느껴져 숨이 탁 막혔다. --- p.100
“얼마 전 일이 좀 있었는데,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을 빼놓고 무시하고 그런 게 난 싫었어. 다 함께 화합하고 힘을 합쳐야 하는 거 아니니? 그런데 여자라고 빠지라는 말은 정말 싫더라. 우리도 엄연히 투표권이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보란 듯이 후보로 나선 거야. 박영민보다 표를 더 많이 받는 게 목표야.”--- p.135
서재원은 축구경기로 아이들의 호감을 잃은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여자 아이들의 실망감이 큰 것 같았다.
어리숙하게 북쪽 아이들의 게략에 말려든 것이 한탄스럽지만 지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 때다. 아이들의 실망감을 본인의 장점으로 끌어올릴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망가진 이미지가 굳혀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 p.149
아빠가 일러준 대로 박영민의 집안 얘기를 들고 나온 건 잘한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도 박영민을 찍을 북쪽 아이가 몇이나 될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선거든 정책이든 인간은 이성이나 사상이 아닌 마음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정치는 인간의 뇌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얻는 일이다. 박영민의 포기는 현명한 선택이다. --- p.200
차별이니, 기회의 균등이니 하는 박영민의 말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런 말은 약자들의 논리일 뿐이다. 난 차별에 찬성한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별에 찬성한다.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쌓아온 스펙과 실력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것이 뭐가 잘못됐단 말인가. 그리고 그걸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잘난 부모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부가 세습되고 어쩌고…… 하는 말들도 있다. 그렇다면 기구한 자신의 운명을 탓할 것이지 나한테 뭐라 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