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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
저자 : 김원일
출판사 : 실천문학사
출판년 : 2007
정가 : 9800, ISBN : 9788939205710
책소개
계간 『실천문학』에 5회(2005년 겨울~2006년 겨울) 연재되었던 김원일 장편소설. 일제시대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 백 년을 묘파한 『전갈』은 비극적 운명을 지닌 삼대의 가족사를 통해 현대사의 그늘 속에서 소멸되어간 민중의 소외된 삶을 거시적 서사세계와 다양한 시점 변화를 활용하여 밀도 높게 그려내고 있다.
미시적으로는 삼대의 생을 통해 인간 본연의 내외적 속성을 묘파해냈다면, 서로 다르면서도 닮은꼴인 이들 삼대의 생을 그려내는 동안 함께 묘사된 우리 현대사 백 년의 면면은 장편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충분히 살려주고 있다. 일제시대 말과 분단시대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거쳐 70~80년대 산업 개발의 현장과 2000년대의 ‘바다이야기’ 게임장까지,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은 백 년이라는 거시적 관점의 서사이다.
목차
계간 『실천문학』에 5회(2005년 겨울~2006년 겨울) 연재되었던 김원일 장편소설 『전갈』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민청학련’의 배후로 지목된 ‘인혁당사건’의 진실을 추적한 연작소설집 『푸른 혼』 이후 꼭 2년 만이다. 일제시대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 백 년을 묘파한 『전갈』은 비극적 운명을 지닌 삼대의 가족사를 통해 현대사의 그늘 속에서 소멸되어간 민중의 소외된 삶을 거시적 서사세계와 다양한 시점 변화를 활용하여 밀도 높게 그려내고 있다. 분단 이후의 이념적 갈등과 그로 인한 우리 민족의 훼손된 삶을 그려내고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던 그의 소설세계는 신작 『전갈』에 이르러 시대와 이념을 넘어선 김원일 문학의 진정한 ‘성취’로 평가될 것이다.
맹독과도 같은 치밀함으로 일궈낸 거시적 서사세계
『전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염상섭의 『삼대』를 연상시킨다. 작중인물이 할아버지 ‘강치무’, 아버지 ‘강천동’, 나 ‘강재필’로 구성되어 있으며 손자인 나 ‘강재필’의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는 점, 한 가족 삼대 가운데 할아버지와 ‘나’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아버지의 이야기는 보조적 역할을 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두 소설의 주인공인 할아버지 대의 계층적?사회적 배경이 다르고 소설 속의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지식인의 고뇌와 삶의 방향을 다루고 있는 『삼대』와 달리, 『전갈』의 화자 강재필은 소외된 계층에 속한 인물로서 폭력 집단과 관계를 맺고 있다.
『전갈』의 화자인 강재필이 폭력 조직과 관련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지만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할아버지의 생애를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폭력 조직과 관련된 자신의)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하며 새로운 삶을 향한 개심의 결말을 암시한다. 이는 그가 지식인은 아닐지언정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이 지식인의 자기 성찰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새로운 삶의 보장으로 이어지거나 삶의 본질에 대한 해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1970년에 출생한 강재필은 가난과 폭력으로 점철된 유소년 시절을 밀양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비교적 유순한 방관자적 생활을 하였으나 어떤 일을 계기로 자신이 싸움을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이후, 청소년기를 학교 폭력의 상징적 존재로 지내다가 일단의 폭력 사건으로 유치장 신세를 진 다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87년 서울로 상경, 폭력 조직에 가담한다. 절도, 폭력, 마약 등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동안 10여 년이 흘러버렸고 그 와중에 아들 종호를 얻었으나 종호 엄마와는 이혼한다.
강재필에게 있어 자신의 가족사는 부끄러움일 뿐이다. 아버지 강천동은 술주정과 폭력으로만 기억되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강간당해 억지로 시집와 살다 버림받다시피 하며 나이 마흔도 못 돼 거식증에 걸려 요양원에서 생을 마쳤다. 출옥하여 ‘갱생’을 다짐한 강재필은 강간으로 잉태된 것이나 다름없는 출생의 비밀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비루한 삶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을 상쇄시키는 방편으로 일제시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했다는 할아버지의 삶을 복원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는 지금까지 한심한 인생을 살아온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자신의 정체성 확인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런 냉혈동물 심보를 가지게 되었나 곱씹’으며 ‘그것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을 유전인자 탓이 아닐까’ 생각하기에 이른다.
작품 전체에 걸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유전인자’이기도 하거니와 할아버지 강치무에서 아버지 강천동, 그리고 화자인 강재필, 삼대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의 근저에는 프로이트 식 사고가 깔려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성장 과정이 성격(생)을 결정한다는 정신분석 이론이 그것이다.
화자인 강재필과 그에 의해 복원되는 할아버지 강치무의 생애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아버지 강천동에 관한 묘사에서도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명징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만주 하얼빈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은 그해 겨울 선대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와 성장한 강천동은 (중략) 무엇 하나 제대로 잘하는 게 없었다. 몸집만 유달리 큰 뿐 학교 성적은 늘 꼴찌를 맴돌았고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불량패들과 어울리더니 중학교를 졸업하자 진학을 포기했다”와 같은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강재필의 어린 시절과 놀랍게 유사하다. 강천동의 성격은 일제시대 만주 하얼빈에서 맞벌이를 해야 했던 부모와의 유리된 애착관계에서 형성된 것이고, 강재필은 결핍에서 비롯된 폭력적 성격의 아버지 강천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삼대, 백 년에 걸친 우리 현대사의 그늘
그 그늘 속에 재창조된 캐릭터들의 향연
미시적으로는 삼대의 생을 통해 인간 본연의 내외적 속성을 묘파해냈다면, 서로 다르면서도 닮은꼴인 이들 삼대의 생을 그려내는 동안 함께 묘사된 우리 현대사 백 년의 면면은 장편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충분히 살려주고 있다. 일제시대 말과 분단시대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거쳐 70~80년대 산업 개발의 현장과 2000년대의 ‘바다이야기’ 게임장까지,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은 백 년이라는 거시적 관점의 서사이다.
이러한 거시적 서사세계에 생동감을 부여해주고 있는 것은 작가에 의해 창조된 인물들이다. 역사적 사실 속에 재창조된 허구의 인물을 투입함으로써 작중인물에 생동감을 주는 동시에 리얼리티까지 확보하는 식의 기법은 김원일이 자주 사용한 기법이다. 예컨대, 『늘 푸른 소나무』 같은 대작에서 작가는 하인 출신의 ‘어진이’가 상전인 ‘백상충’을 스승으로 삼고 1910년대 식민지 한국의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석주율’이라는 새로운 인물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리는 데 있어서 이강년, 유인석, 허위 등의 의병장과 박상진, 홍범도, 김좌진 등의 독립군 지도자들의 활약상에 힘입은 바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백 군수’의 아들 백상충과 머슴의 아들 어진이는 순전한 허구의 인물이지만 역사적 인물들과의 관계에 의해 실재의 역사적 사실 이상의 사실성을 획득했다. 이러한 소설적 장치는 김원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바람과 강』이나 최근작인 『푸른 혼』에서도 발견되지만 신작 장편소설 『전갈』에 와서 더욱 두드러진다. 독립운동의 현장과 이데올로기 갈등의 현장에 등장하는 인물, 산업 현장에서 빚어졌던 현대사의 그늘진 사건, 그리고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성인 게임장 ‘바다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인물과 사건 속에서 작가 김원일에 의해 창조된 허구의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사실성을 획득한다. 1900년부터 2005년에 걸친 삼대의 가족사를 그려낸 김원일이 소설 속 주인공들을 역사적 현실 속에 집어넣어 생생한 (허구의) 역사적 인물로 재창조해내는 데 독보적인 능력을 가진 작가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