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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사 : 민음사
출판년 : 2013
정가 : 14800, ISBN : 9788937487927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

모든 것이 완벽했던 스무 살 여름으로
서른여섯 살 다자키 쓰쿠루는 순례를 시작했다

출간 7일 만에 100만 부 돌파
전 세계가 기다려 온 초대형 베스트셀러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일본에서 50만 부라는 파격적인 초판 부수로 기대를 모으고, 출간 이후에는 7일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는 등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다시 쓴 세계적 화제작이다.

철도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남자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개인 간의 거리, 과거와 현재의 관계,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프란츠 리스트 「순례의 해」의 간명하고 명상적인 음률을 배경으로 인파가 밀려드는 도쿄의 역에서 과거가 살아 숨 쉬는 나고야, 핀란드의 호반 도시 헤멘린나를 거쳐 다시 도쿄에 이르기까지, 망각된 시간과 장소를 찾아 다자키 쓰쿠루는 운명적인 여행을 떠난다. ‘색채’와 ‘순례’라는 소재를 통해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솔직하고 성찰적인 이야기로, 무라카미 하루키가『노르웨이의 숲』 이래 처음으로 다시 집필한 리얼리즘 소설이다.

출간되기까지, 내용이나 배경 등 작품에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화제가 되었으며 출간 당일 자정에 도쿄 시내 유명 서점에 책을 사려는 독자의 행렬이 늘어서면서 팬들의 기대를 증명했다. 특히 소설의 주제와 연관하여 작품에 등장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이 연주한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는 절판된 음반이었음에도 복간되어 클래식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의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을 옮긴 전문 번역가 양억관은 단어 하나하나에 실린 철학적인 상징과 입체적인 인물의 심리를 선명하게 포착한 충실하고 유려한 번역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려 온 한국 팬들에게 잊지 못할 순례의 여정을 경험하게 한다.

돌아가야 할 곳에 돌아가기 위해, 되찾아야 할 것을 찾아내기 위해, 오늘 시작되는 특별한 여행. 한 사람의 성인이 삶에서 겪은 상실을 돌아보는 여정, 고통스럽고 지난하지만 한편으로 그립고 소중한 그 시간을 다자키 쓰쿠루와 함께하며, 우리는 ‘다시’ 삶을 향해 나아갈 희망을 얻게 될 것이다.

목차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多崎つくる)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사이 스무 살 생일을 맞이했지만 그 기념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 나날 속에서 그는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는지, 지금도 그는 이유를 잘 모른다. 그때라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 따위 날달걀 하나 들이켜는 것보다 간단했는데.
쓰쿠루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죽음에 대한 마음이 너무도 순수하고 강렬하여 거기에 걸맞은 구체적인 죽음의 수단을 마음속에 떠올릴 수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구체성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다. 만일 그때 손이 닿는 곳에 죽음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면 그는 거침없이 열어젖혔을 것이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말하자면 일상의 연속으로서.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가까운 곳에서 그런 문을 발견하지 못했다. ---pp.7-8

그녀의 집 거실에 있던 야마하의 그랜드 피아노. 시로의 꼼꼼한 성격에 맞게 늘 조율이 잘되어 있었다. 티 하나 없이 맑게 윤기를 띤 표면에는 손가락 자국도 없었다. 창으로 비쳐 드는 오후의 햇살. 정원의 사이프러스가 늘어뜨리는 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는 레이스 커튼. 테이블 위의 찻잔. 뒤로 단정하게 묶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과 악보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길. 건반 위에 놓인 열 개의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 페달을 밟는 두 발은 평상시 시로를 생각하면 상상이 안 될 만큼 힘차면서도 적확했다. 그리고 종아리는 유약을 바른 도자기처럼 하얗고 매끈했다. 연주를 부탁하면 그녀는 곧잘 그 곡을 쳤다. 「르 말 뒤 페이」. 전원 풍경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향수 또는 멜랑콜리. ---pp.80-81

“역을 만드는 일하고 마찬가지야. 그게, 예를 들어 아주 중요한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약간의 잘못으로 전부 망쳐져 버리거나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 설령 완전하지 않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역은 완성되어야 해. 그렇지? 역이 없으면 전차는 거기 멈출 수 없으니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맞이할 수도 없으니까. 만일 뭔가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필요에 따라 나중에 고치면 되는 거야. 먼저 역을 만들어. 그 여자를 위한 특별한 역을. 볼일이 없어도 전차가 저도 모르게 멈추고 싶어 할 만한 역을. 그런 역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거기에 구체적인 색과 형태를 주는 거야. 그리고 못으로 네 이름을 토대에 새기고 생명을 불어넣는 거야. 너한테는 그런 힘이 있어. 생각해 봐. 차가운 밤바다를 혼자서 헤엄쳐 건넜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