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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저자 : 레이철 커스크
출판사 : 민음사
출판년 : 2008
정가 : 12000, ISBN : 9788937482007

책소개


스타벅스도, 명품구두도 나오지 않는,
진짜 현실을 사는 여자들의 이야기


2,30대 미혼 여성들을 위한 '칙릿'이 대세인 요즘. 30대 주부가 등장하는 소설도 그만큼 찾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더 반가운 책이다. 스타벅스도, 마놀로블라닉도 나오지 않는, ‘진짜 현실’을 살아가는 30대 주부 다섯 명의 하루를 그린 소설. 주부들의 불안과 허탈감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작가 레이철 커스크는 첫 소설 『아그네스 구하기』로 휘트브레드 신인소설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고, 세번째 소설 『시골 생활』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는 여성, 그중에서도 아내이자 어머니인 여성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깊이 있게 발전시킨 장편소설이다. 우리나라의 분당이나 일산과 비슷한 공간인, 영국의 가상 베드타운 알링턴파크를 배경으로 30대 주부들의 하루를 그린 이 소설은 겉보기에는 안온한 일상을 사는 여성들의 내면에 잠재된 아슬아슬한 불안과 분노를 매우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잘 닦인 길, 무성한 녹음, 아담한 집.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 등교시키고, 집안일하고, 쇼핑하고, 손님 대접하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어느 날, 마을의 다섯 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어머니 역할이 피곤하고 지겨운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여전히 신성 모독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작가는 대담하게도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특히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팽배한 문명 안에서 주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경제적 안정과 자유로운 여가를 얻었으나, 도덕적 무관심과 인습, 타인의 기대에 따라 타율적인 삶을 살아갈 뿐, 진정한 행복과 성취를 이루지는 못한 현대인들의 삶을 신랄하게 해부하고 있다.

오렌지 상 최종 후보작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이 작품은, 작품 속 이야기 하나하나가 21세기 사회에 대한 뛰어난 비평으로도 손색없는 한 편의 단편으로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목차


남편의 성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자신의 처녀 때 성과 함께 쓰기로 했을 때, 처음 얼마간은 용기가 필요했다. 솔리는 결혼은 그런 것이라고, 하이픈으로 연결되는 대등한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 p.162

솔리는 마치 자신이 아무런 제동 장치 없이 자유낙하하면서 예정된 위태로운 상황으로 점점 더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때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에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네 번째 아이를 가진 지금은 누군가 자신에게 억지로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은 느낌, 자신의 몸이 너무 비대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반면 남편에게는 가늘고 뾰족하고 단단한 남성성만 남는 것 같았다. 솔리의 전동믹서처럼, 같은 자리에서 회전하는 남편에 맞춰 그녀 자신은 거품처럼 점점 더 부풀어 갔다. --- pp.149~150

"뭔가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 그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게 될 때가 있단다. 기다리는 동안 뭘 기다리는지도 정확히 모르지. 그냥 다음 단계를 기다리는 거야. 그런데 결국 끝에 가서는 그 다음 단계라는 게 아예 없다는 걸 깨닫는 거지. 지금 있는 게 전부라는 걸.……너는 그렇게 안 됐으면 좋겠구나." "절대 그렇게 안 돼요." 새러가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로. 나는 아기도 안 가질 거예요. 혼자 살면서 죽어도 결혼 안 할 거라고요. 결혼은 증오의 다른 말일 뿐이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줄리엣은 생각했다. --- pp.216~217

사랑을 하고 싶었던 마음은 남편과의 관계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작은 프로덕션에서의 파트타임 직으로 바뀌었다. 뭔가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방 세 개짜리 집이 되었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두 딸 클라라와 엘지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내내 그 요란한 바람이 불었다. 어찌나 불어 대는지, 그녀는 바람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메이지는 변화와 움직임을 바라는 자신의 그칠 줄 모르는 욕구가 잠재워질 수 있는 어떤 안정된 곳을 원했다. --- p.237

가족은 흐린 날의 망망대해처럼 혼란스러웠다. 오락가락하는 믿음이 있고, 잔인함과 미덕이 교차하고, 감정과 도덕이 요동치는 곳, 끊임없이 폭풍우와 고요함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미친 듯이 폭우가 내리다가 다시 햇살이 비치면 결국 둘 사이의 차이를 잊어버리게 되고,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무엇이 되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결국엔 그저 살아남는 것, 헤치고 나가는 것만 중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