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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일기
저자 : 폴 오스터
출판사 : 열린책들
출판년 : 2014
정가 : 11800, ISBN : 9788932916286
책소개
폴 오스터가 [호흡의 현상학]이라고 명명한
독특하고도 새로운 형식의 회고록
[우연의 미학]이라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탁월한 이야기꾼 폴 오스터. 『겨울 일기』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폴 오스터의 신작 에세이이다.
『겨울 일기』는 예순네 살의 작가 폴 오스터의 독특한 형식의 회고록이다. 생의 감각적 경험을 기술하는 데 집중한 점, 인과관계나 시간적 순서에 얽매이지 않는 비선형적 구성, 자신을 2인칭으로 묘사하는 관찰자 시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당신이 살아 있음을 기억할 수 있는 첫날부터 오늘까지 이 몸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살펴보자]고 말한다. [호흡의 현상학], 즉 숨을 쉬는 육체의 감각에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 그리고 그 교차점에서 [나]를 규명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겨울 일기』의 회고록의 특징이다.
오스터는 육체의 감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한 가지는 성적 쾌감이나 식욕,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 가족에 대한 사랑 등을 포함한 쾌감이고, 다른 한 가지는 상처가 나는 고통, 이별의 슬픔, 패배감, 피하고 싶은 죽음 등을 포함한 고통이다. 동시다발적이거나 갑자기 등장시키기도 하면서 나열된 감각적 사건들은 우연하게도 연결되어 있다.
여러 가지 문학적 기법을 활용하여 자신의 삶을 심도 있게 통찰하여 특유의 빼어난 문체로 풀어냈다. 흐트러지지 않는 관찰자 시점의 서술 형태는 묘한 이입을 불러일으킨다. 담담하게 써 내려갔지만 결국 [당신]이 처한 상태와 감정은 독자의 것이 된다.
목차
언제나 당신을 감싸고 있던 것은 외부, 즉 허공이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당신을 둘러싼 허공 속 당신의 몸이다. 발뒤꿈치는 땅에 굳게 딛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허공 속에 있다. 그곳이 당신의 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고 또한 모든 것이 몸에서 끝날 것이다. 지금 당신은 바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 후에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열과 추위, 셀 수 없이 다양한 비, 눈이 없는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뚫고 온 안개, 바르 강가에 있는 집의 타일 지붕을 덜거덕거릴 정도로 미친 듯이 때리던 기관총 소리 같은 우박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주위를 온통 차지한 것은 바람이다. 공기는 가만히 있을 때가 거의 없다. 때때로 당신을 에워싸고 있지만 겨우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공허한 허공 너머로 부는 산들바람과 부드럽게 퍼져 나가는 리듬, 갑작스러운 돌풍과 스콜, 타일 지붕으로 덮인 그 집에 살면서 겪었던 사흘간의 미스트랄, 대서양 해변을 따라 휩쓸며 폭우를 뿌리는 북동풍, 강풍과 허리케인, 회오리바람으로 존재하고 있다. --- p.18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 길잡이 삼을 만한 것도 거의 없거나 아예 전혀 없지만, 당신은 자신이 어마어마한 선사 시대로부터의 이주와 정복, 겁탈, 유괴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당신의 조상들은 수많은 영토와 왕국에 걸쳐 먼 길을 돌고 돌아 떠돌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인간 부족들은 수만 년간 온 세상을 떠돌았고 여행을 했던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니까. 누가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 또 누구를 낳아 결국 누가 1947년 당신을 낳은 두 부모를 낳았는지 누가 알겠는가? 당신은 조부모까지만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고 외증조부모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주 조금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 앞의 세대는 백지 상태에 불과하다. 추측과 막연한 짐작만 가능한 허공이다. --- p.125
당신은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거울과 사진 덕분에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지만, 친구든 낯선 사람이든 가장 가까운 이들이든 다른 사람들 속에서 움직일 때는 자기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팔이나 다리, 손과 발, 어깨와 몸통 등 자신의 일부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앞모습만이다.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서 다리 뒤를 보는 식 말고는 자신의 뒷모습은 볼 수 없다. 당신의 얼굴은 절대 볼 수 없다. 결국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얼굴이 바로 당신 자신, 당신의 정체성의 본질적인 사실이다. 여권에는 손과 발 사진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제 64년간 당신의 몸 안에서 살아온 당신조차 아마도 따로 떼어 사진을 찍어 놓으면 클로즈업한 당신의 귀나 팔꿈치, 눈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신의 발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당신 눈에 익숙하지만, 하나씩 따로따로 떼어 놓으면 완전히 이름 없는 것이 된다. --- p.175
재채기하고 웃고, 하품하고 울고, 트림하고 기침하고, 귀를 긁고, 눈을 비비고, 코를 풀고, 목청을 가다듬고, 입술을 깨물고, 아랫니 뒤를 혀로 쓸고, 몸을 떨고, 방귀를 뀌고, 딸꾹질을 하고, 이마에서 땀을 훔치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빗고 ? 이런 일들을 몇 번이나 했을까? 몇 번이나 발가락을 채이고 손가락을 찧고 머리를 부딪쳤을까? 몇 번이나 발을 헛디디고 미끄러지고 넘어졌을까? 몇 번이나 눈을 깜박였을까? 몇 발짝이나 걸었을까? 몇 시간이나 손에 펜을 쥐고 보냈을까? 몇 번이나 키스를 주고받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