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검색
본문
Powered by NAVER OpenAPI
-
바이킹
저자 : 팀 세버린
출판사 : 뿔(웅진문학에디션)
출판년 : 2008
정가 : 12000, ISBN : 9788901089669
책소개
바이킹, 팩션으로 부활하다
고대 어느 민족보다도 강렬한 이미지를 지녔으나 그 실체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바이킹.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간극을 좁히며 고대 바이킹의 투박하고 근원적인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역사적 고증과 소설적 상상력을 거쳐 10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고대 북유럽과 바이킹의 세계가 장대하면서도 세밀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새 천 년을 눈앞에 둔 서기 999년, 예지력을 지닌 아일랜드 여인 토르군나와 그린란드의 행운아 레이프 사이에서 태어난 토르길스 레이프손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오가며 성장한다. 그는 여러 스승들로부터 바이킹의 전통과 옛 신앙의 지혜를 배우며 ‘옛 신들’의 땅을 침범한 기독교 문화를 경계하게 된다. 이후 토르길스는 서쪽의 오지 빈란드에서는 끔찍한 학살로 바이킹 마을이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아이슬란드에서는 두 집안 간의 잔혹한 싸움에 휘말리기도 하다가, 전쟁 포로가 되어 흘러간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 학문을 갈고 닦는 여정에 이르는데...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에 이르는 바이킹 민족에 대한 역사와 상식은 사건이 진행되고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과정 중 자연스레 삽입되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지적인 충족감을 선사한다. 대부분 농가이며 뒤집힌 배 모양을 한 공동주택에 거주했던 바이킹의 겨울 풍습과 자급자족적인 생활상, 가족이나 일가에 대한 모욕이 피를 부르는 복수전으로 이어지는 등 명예에 대한 바이킹의 집착 등 에 대한 묘사, 더블린과 맨 섬 등을 점령했던 바이킹 세력과 잉글랜드 왕 브리안 보루와의 클론타르프 전쟁 장면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이킹의 역사를 세밀하게 복원해내고 있다.
목차
잔인한 해적으로 각인된 바이킹.
그들의 가려진 역사와 전설, 생활상을 팩션Faction으로 만난다.
날카로운 투구와 무시무시한 도끼, 침략과 잔인한 살육. 지금껏 당신이 기억하는 ‘해적’ 바이킹은 잠시 잊어라. 고대 어느 민족보다도 강렬한 이미지를 지녔으나 그 실체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바이킹. 그들은 명예를 위해 몸의 일부는 물론 목숨마저도 던질 수 있는 영웅이었고, 어느 민족보다도 깊고 원초적인 신앙을 지닌 신도이자 유럽과 아메리카 신대륙을 오가며 새 천년의 문을 연 메신저였다. 마르코 폴로, 이아손, 오디세우스, 신밧드 등 서구 역사와 신화 속 현장을 뒤쫓는 탐험가로도 유명한 작가 팀 세버린은, 고대 아이슬란드 사가를 바탕으로 쓴 『바이킹-오딘의 후예』에서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간극을 좁히며 고대 바이킹의 투박하고 근원적인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옥스퍼드에서 지리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세버린의 역사적 고증과 소설적 상상력을 거쳐 10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고대 북유럽과 바이킹의 세계가 장대하면서도 세밀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본격적으로 바이킹을 주제로 한 소설로서는 국내 최초로 번역 출간되는 셈이다.
예고된 종말일지라도 나아가야 하는 삶, 운명과도 같은 방랑 속의 참된 희망
새 천 년을 눈앞에 둔 서기 999년, 예지력을 지닌 아일랜드 여인 토르군나와 그린란드의 행운아 레이프 사이에서 태어난 토르길스 레이프손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오가며 성장한다. 그는 여러 스승들로부터 바이킹의 전통과 옛 신앙의 지혜를 배우며 ‘옛 신들’의 땅을 침범한 기독교 문화를 경계하게 된다. 이후 토르길스는 서쪽의 오지 빈란드에서는 끔찍한 학살로 바이킹 마을이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아이슬란드에서는 두 집안 간의 잔혹한 싸움에 휘말리기도 하다가, 전쟁 포로가 되어 흘러간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 학문을 갈고 닦는 여정에 이른다. 불과 스무 살에 이르기까지 그는 전투와 질병, 난파를 겪으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혼돈과 불안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오딘이 내린 운명과도 같은 방랑을 계속한다. 영민한 지혜와 다양한 인물들의 도움으로 삶의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헤쳐 나가는 토르길스의 여정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서 소외된 듯하나 실은 개별적인 주인공으로서 자리하는 소시민의 가치를 위로하고 대변하는 것이다. 토르길스는 바이킹이 얽힌 중요한 역사적 현장을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적 시선으로 그려내며 서술자로서의 몫을 교묘히 완수한다.
용맹한 전사이자 개척자인 바이킹은 제한된 환경을 벗어나 먼 바다로 나가고, 미늘 갑옷을 입고서 전투에 임했다. 진취적인 정신과 호전적인 본능으로 한때 유럽 대륙을 지배한 그들은 그러나 결국 패권을 잃고 흩어진다. 이 책은 그러한 바이킹의 마지막 세기를 다루고 있다. 격변하며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영민한 ‘셰이드만나’인 토르길스는 크고 작은 전쟁과 사건을 겪으며 운명을 마주하는데, 그가 짊어지는 운명은 개인사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한쪽 눈을 바쳐 지혜를 얻고 스스로 창에 찔려, 세계를 지탱하는 나무 위그드라실에 매달린 뒤 룬 문자의 비밀을 터득한 신 오딘처럼, 현자 토르길스는 방랑과 인고의 세월을 지나 지혜에 따르는 희생과 고통을 깨닫게 된다.
“가장 위대하고 심오한 지혜에는 고통과 희생이 따른단다. 오딘은 미미르의 샘물을 마셔 신들이 살아남을 은밀한 지혜를 얻고자 눈 하나를 내주었지. 또한 룬의 비밀을 터득하려고 스스로 창에 찔린 채 세계수(世界樹)인 위그드라실에 아흐레나 매달려 있었어. 희생과 고통을 겪어야만 정신과 영혼의 문이 열려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었거든. 그게 바로 우리가 기독교도와 구별되는 점이야. 그들은 영혼이 가슴속에 산다고 믿지만, 우리는 영혼이 정신 속에 존재하므로 정신이 자유로워져야 영혼도 해방된다고 믿는단다.”(p.210)
고대 아이슬란드 사가 속 실존 등장인물과 함께 떠나는 바이킹 세계로의 여행
이 책에서 토르길스가 겪는 사건과 만나는 인물들은 대개 실존했다. 책 말미에서 밝히고 있듯, 저자는 북구인의 북아메리카 탐험 역사를 담은 설화인 『붉은머리 에이리크의 사가』와 『그린란드 정착민 설화』,『냘의 사가』등 기타 아이슬란드 사가를 토대로 하여 ‘팩션’인 이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토르길스의 할아버지로 설정된 ‘붉은머리’ 에이리크는 실제로 982년 그린란드를 발견하였고 아버지인 ‘행운아’ 레이프 에이릭손은 콜럼버스보다 5세기 전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해 ‘빈란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삼촌인 토르발트가 아메리카 원주민인 스크랠링과 대결을 펼치는 장면, 토르길스의 양어머니인 구드리드의 두 번째 남편으로 묘사되는 토르핀 칼세프니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를 꾀하다가 악천후와 스크랠링과의 대결 끝에 그린란드로 귀환하는 과정도 사가에 기록된 실제 사실들이다. 토르길스가 1014년경 아일랜드에서 참여했던 바이킹 연합군과 앵글로 색슨족과의 전쟁도 ‘클론타르프 전투’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주인공 토르길스 또한 실제 역사상에서는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붉은머리 에이리크의 사가』에 그에 대한 언급이 분명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사내아이가 …… 그린란드에 도착하자 레이프가 자신의 아들로 인정했다. 어떤 이들은 이 토르길스가 프로드리버 괴사건의 전년 여름에 아이슬란드로 건너왔다고 한다. 그 후 토르길스는 그린란드로 건너갔는데, 죽을 때까지 기괴한 사건에 휘말린 듯하다.” (p.378, ‘지은이의 메모’에서)) 굵직굵직한 바이킹의 역사적 현장에서 토르길스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옛 신화와 운명의 의미를 깨닫는 소설적 재미 또한 작가는 놓치지 않고 있다.
‘다빈치 코드’보다 정밀하고 ‘반지의 제왕’보다 생생하다!
약탈과 전투 속에 드러나는 바이킹의 역사와 생활상
작가는 토르길스의 여정을 쫓아가며, 영화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바이킹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에 이르는 바이킹 민족에 대한 역사와 상식은 사건이 진행되고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과정 중 자연스레 삽입되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지적인 충족감을 선사한다. 용골과 돛대를 갖추어 급류와 역풍에 강하고, 육지로도 운반이 가능해 전투에 다방면으로 활용 가능한 바이킹 선, 아이슬란드 최초의 입법 기관이자 분쟁 조정 기구인 알팅의 문제 해결 방식, 대부분 농가이며 뒤집힌 배 모양을 한 공동주택에 거주했던 바이킹의 겨울 풍습과 자급자족적인 생활상, 가족이나 일가에 대한 모욕이 피를 부르는 복수전으로 이어지는 등 명예에 대한 바이킹의 집착에 대한 묘사 등에서는 기존 북유럽 관련 인문서 못지않은 치밀함과 정교함이 드러나고 있다. 더블린과 맨 섬 등을 점령했던 바이킹 세력과 잉글랜드 왕 브리안 보루와의 클론타르프 전쟁 장면은 건조하면서도 세밀하게 묘사되어,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생동감을 전한다.
서쪽으로의 항해가 남긴 첫인상은 짐을 가득 실은 크노르의 느리고 율동적인 움직임이었다. 길고 낮은 너울 위에서 선체가 끊임없이 오르내렸고, 너울이 용골을 지나칠 때마다 배가 살짝 기울곤 했다. 돛대 머리를 올려다보면 하늘을 배경으로 풍향계가 지속적으로 타원을 만들어냈다. (중략) 나는 드라카르에 오르자마자, 빈틈없이 끼워 맞춘 매끈한 갑판과 최고급 떡갈나무로 만든 가로 들보를 손끝으로 문질러보았다. 만약 내가 배에 관해 까막눈이었다면 검게 칠한 기다란 선체의 우아한 곡선을 알아보지 못했을 테고, 양쪽 뱃전을 따라 쇠로 고정시킨 수많은 노의 완벽한 대칭, 정교하게 깎아서 돛대와 밧줄에 매단 나무 부품, 선원들이 쏟아부은 정성의 뚜렷한 흔적을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p.106)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매년 한 차례 비탈진 풀밭에 모여 중대사를 결정하는 아이슬란드의 방식은 아주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대략 200년 전 처음 정착한 이래 줄곧 그렇게 일을 처리했으며, 사실 이 통치 방식은 귀족들이 파벌을 이루어 최종 판결이나 이익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여타 왕국들의 평의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아이슬란드에는 유일한 군주가 없을 뿐이며, 따라서 법률적 논쟁마저 소진되면 양측이 자기들끼리 알아서 해결한다. 이때는 말 대신 무기가 등장한다. (p.161)
갑자기 두 싸움꾼이 치명상을 입힐 기세로 미친 황소 한 쌍처럼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먼저 가격한 쪽은 망토를 입은 사내였다. 그는 상대보다 팔이 짧다는 것을 알고 도끼를 냅다 날렸다. 마지막 60센티미터를 날아간 도끼는 북구 사내의 뺨을 뭉텅 베어버리면서 뼈를 드러냈다. 그러자 비틀거리는 북구 사내의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돌격하던 기세와 도끼질의 힘 때문에 앞으로 쏠린 그의 도끼가 아일랜드 사내의 어깨를 찍고 목에 깊이 박혔다. 비록 목은 자르지 못했지만 치명상을 입힌 일격이었다. (p.261)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300년 이상 이웃나라를 침공하며 약탈을 일삼은 거침없는 침략자 바이킹. ‘바이킹’이라는 명칭은 ‘만’이나 ‘내포’를 뜻하는 고대 스칸디나비아 어 ‘비크vik’에서 유래한 것으로, ‘항해’라는 의미도 지닌다. 바이킹이 최초로 약탈에 나섰을 당시, 현재의 스웨덴과 노르웨이, 덴마크인들은 고대 스칸디나비아어라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민족이었으며, 생활양식과 숭배하는 신 또한 동일했다. 이 스칸디나비아인들은 험준한 침엽수림과 산 때문에 내륙으로 진출하기가 쉽지 않아 해로를 이용하게 되었고, 증가하는 인구를 소화하기 위한 신대륙과 부를 끝없이 열망한 그들은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거쳐, 아일랜드를 약탈하고 유럽 본토에까지 진격하며 생존과 부를 쫓는다. 바이킹의 해상 활동을 통해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는 유럽 역사 곳곳에 흡수되어 영향을 미쳤다. 모험과 먼 항해를 즐기는 용감한 바이킹, 그들의 교역과 상품에 대한 관심과 부에 대한 갈망은 곧 적극적이고 일상적인 약탈 행위로 이어진 것이다. 그들의 호전성과 노략질은 일정 부분 환경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노르웨이인이 건설한 아일랜드의 바이킹 부족국가는 9세기 이래 바이킹이 얼마나 대규모로, 격렬하게 침략해 왔는지 증명한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을 이루는 11세기 초, 서기 1000년에 아일랜드의 브리안 보루는 바이킹을 몰아내고 나라를 되찾은 뒤 스스로를 아일랜드 왕이라 선언한다. 그러는 가운데 아일랜드의 켈트 문화와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 문화가 뒤섞이고, 수많은 바이킹이 그들의 전통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토르길스와 그의 아버지를 비롯, 이 책의 주된 등장인물을 이루는 노르웨이계 바이킹들은 정기적으로 해상 약탈을 자행했고, 인적이 드문 땅을 점령해 남으로는 유럽, 서로는 그린란드와 북아메리카 대륙까지 발을 뻗는다. 그리고 인구가 희박한 스코틀랜드 북부와 셔틀랜드 제도, 오크니 제도 등에 정착하여 살았다. 그곳 해안은 맨 섬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자, 잉글랜드와 프랑스 약탈의 출발점이 되었다.
북유럽 종교와 전설에 깃든 바이킹의 세계관을 만나다
바이킹의 생활상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소개 외에도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재미는 그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북유럽 신화와 전설, 그리고 기독교와 구 종교 간의 충돌 양상이 다채롭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주인공 토르길스가 태어나 자란 무렵인 11세기 초에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세력이 확장되었다. 결국 그토록 유서 깊고 완고한 옛 신앙이 신흥 종교인 기독교에게 밀려나 소멸되는 과정에서, 선을 표방하는 기독교가 유무형의 폭력을 앞세워 구신도를 강제 개종시키고 서민들을 수탈하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바이킹 창조 신화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신 오딘이 싸움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전략가의 면모를 지녔으나 동시에 지혜와 전쟁, 승리의 신이라는 사실은, 이 책의 부제인 ‘오딘의 후예’가 어떤 의미인지를 암시한다. 오딘을 숭배하며 그와 닮은 재능을 지닌 토르길스는 몇몇 주군을 거치는 동안, 주로 첩보 활동과 언어 습득, 글자 해독 등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데, 이 또한 ‘위장한 채 돌아다니면서 지식을 모으고, 관찰하면서 조종하는’ 신 오딘 고유의 능력 중 하나이다.
쌍둥이 까마귀 후긴과 무닌―각각 ‘생각’과 ‘기억’―을 양 어깨에 얹은 오딘은 교활하고 무자비하지만 참된 왕이었다. 지혜의 우물을 마시려고 한쪽 눈을 포기하면서까지 집요하게 새로운 지식을 추구한 그는, 지금도 갖가지 모습으로 위장한 채 세상을 누비며 늘 더 많은 정보를 찾아 헤맨다. (중략) 자신의 궁전 발횔에서 오딘은 전장을 누비다 죽은 인간 영웅들을 대접하는데, 이 진정한 전사들은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최후의 전쟁 라그나뢰크에 참전할 날을 기다린다. 결국 그들은 모든 신과 함께 소멸해 버린다. (p.86)
죽은 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교수대에 매달린 인간 곁에 앉아 마지막 비밀을 캐내고, 병신들과 어울려 지내는 오딘의 모습은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 오싹한 매력을 주었다. 게다가 그의 변신술에 홀딱 반한 나는 곧잘 이 우두머리 신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독수리, 벌레, 뱀, 제물로 변하는 상상에 잠겼다. (중략) 나는 늘 여행길에 오를 때면 가장 위대한 방랑자인 만물의 아버지가 나를 보살핀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나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함께 여행하던 동료가 무수히 죽어나갈 때도 나는 줄곧 살아남았으니까. (p.86~88)
스칸디나비아 반도,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에 이르는 게르만 민족들의 신화인 북유럽 전설은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나 톨킨의 판타지〈반지의 제왕〉에서부터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의 시나리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산업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신과 거인, 난쟁이와 예언자, 요정 등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다양한 내기와 복수를 일삼고,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기도 하다가, 결국 종말에 이르는 과정이 담긴 다원적 세계관의 전설은 바이킹의 일상에 늘 함께한다. 기근이 닥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공물을 바치며 무당인 ‘시븰라’에게서 신의 말씀을 듣고, 신비한 힘을 지닌 룬 문자를 사용해 기원과 저주를 내리고 미래를 점쳤다.
아이슬란드에서 고대 룬 문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란다. 그건 갈드라스타피르, 즉 룬 주문이야. 투구를 만들자마자 새겨 넣은 건데, 그 주문 덕분에 이 투구는 물리적인 보호 장비를 넘어 부상을 멀리하는 부적이 된 거야. (중략) 룬 문자로 새긴 글귀에는 표면적인 뜻을 넘어서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단다. 자기 이름을 룬으로 새길 줄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지만, 주문과 부적과 저주를 쓸 줄 아는 사람은 비법 전수자뿐이야. 오딘이 인간에게 알려 준 룬 언어는 이제 한 사람에게서 다음 사람에게로 전해질 뿐이란다. (p.209)
“볼룬드의 대장장이 기술이 워낙 뛰어나자 사악한 니두드가 그를 납치해 도망가지 못하도록 절름발이로 만들어 억지로 왕실에서 금세공 일을 시켰거든. 때를 기다리던 볼룬드는 마침내 니두드의 탐욕스럽고 멍청한 아들들을 자신의 일터로 유인했지. 그리고 놈들을 죽인 다음 눈알로 휘황찬란한 보석을 만들고, 이빨로 브로치를 만들고, 두개골로 은도금 그릇을 만들었어. 그러고는 그들의 어미에게 보석을 선물하고, 누이에게는 브로치, 아비에게는 그릇을 준 거야. (중략) 결국 그는 보드빌드 공주를 유혹해 아이를 배게 한 뒤, 교활하게 쇠 날개를 만들어 훨훨 날아 탈출했단다.” (p.118~119)
티르키르와 토르발은 신들의 행동을 묘사한 이야기를 간단히 들려주곤 했다. 사슬에 묶인 로키가 몸을 뒤틀면 지진이 일어나고, 거대한 독수리 거인 흐래스벨그가 날개를 펄럭일 때 돌풍이 불며, 토르가 자신의 망치 므욜니르를 내리칠 때 생기는 것이 번개이다. (p.213)
북유럽 전설 속에서 노르누라는 여신들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 운명을 결정짓는다. 신조차도 그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빛과 어둠, 질서와 혼란, 생명과 파괴가 맞붙는 최후의 전쟁 라그나뢰크가 찾아오면 신들을 비롯해 온 세상이 파멸한다. 신들마저 종말을 맞이한다는 불길한 예언이 기둥을 이루는 북유럽 전설에는 낡은 세계를 파괴하고 새 세계를 맞이하려는 열망이 깃들어 있다. 유일신인 기독교와는 달리,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들의 최후는 곧 인간이라는 종족이 지닌 속성에 대한 인식과 경고가 반영된 것이다.
“어느 누구도 노르누의 결정을 거스를 수는 없어.” 브로디르가 심각하게 말했다. 그는 갑옷 셔츠의 죔쇠와 끈을 조이고 있었다. “단지 그 순간을 지연시킬 뿐이고, 그마저도 신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해.” 끈을 조이는 브로디르의 손가락이 떨리는 걸 보면서, 나는 그가 트란드처럼 믿음이 강하지 못하구나 생각했다. 브로디르의 갑옷 셔츠는 트란드의 투구처럼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유명한 물건이었다. 그 어떤 칼이나 창도 뚫지 못하기 때문에 착용자가 절대로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p.256)
그는 과거의 행동과 미래에 벌어질 사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그 교차점에서 현재의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강조하듯 이 우주에는 만물이 엮여 있기 때문에, 예지력을 타고난 자가 미래는 볼지언정 노르누가 정한 것을 뒤바꿀 수는 없다고 했다. 궁극의 힘을 지닌 이 초자연적인 세 여인은 모든 생명체는 물론이요 신들의 운명마저 결정한다. (p.213)
“나는 애시르와 바니르의 주요 신과 여신들에 대한 기본 지식에서 출발해 나중에는 신전 전체를 꿰뚫었으며, 더불어 노르누와 빛의 엘프, 어둠의 엘프, 드베르그, 서리 거인을 비롯한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고대 우주에서 차지한 위치도 알게 되었다. 트란드가 즐겨 하던 말이 생각난다. “만물은 엮여 있다. 세계수의 뿌리를 생각해 보자. 하나의 뿌리가 다른 뿌리에 얽히고, 다시 새로운 뿌리 쪽으로 뻗어 나가다가 방향을 틀어 스스로에게 얽히지. 자꾸만 뻗어 나가는 나뭇가지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모든 뿌리와 나뭇가지는 나름의 기능을 한단다. 위그드라실을 지탱하면서 위그드라실 자체이기도 하지. 옛 지혜도 다를 바가 없어. 밑바탕 지식을 갖고 있다면 하나의 뿌리나 나뭇가지를 타고 뻗어 나가거나, 한 발짝 물러서서 전체를 볼 수 있지.”(p.212)
운명에 속했으나 그로부터 자유를 얻고자 부지런히 움직이고 나아갔던 바이킹의 연대기를 통해, 죽음이라는 끝을 알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생. 그 과정이 남기는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