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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해부하다
인간을 해부하다
저자 : 한국추리작가협회
출판사 : 산다슬
출판년 : 2003
정가 : 9500, ISBN : 8990783003

책소개


그녀는 돌아온다 : 최혁곤
공모 : 한이
청혼하다 : 정석화
인간을 해부하다 : 류성희
비리가 너무 많다 : 황세연
퀸과 루브의 연인 : 방재희
해독제를 찾아서 : 현정
도륙 : 정가일
인내의 끝 : 장태우
13층의 여인 : 이경재
우연+우연=필연 : 최종철
잠시 후면 : 김경수

목차


한국의 독자들은 추리소설을 호러 소설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정도야 너무 오래된 인식이어서 그러려니 하지만 순문학과 비교하여 이런저런 평가를 내리는 것에는 더러 말문이 막힐 때가 많다. 처음부터 그것이 가능한 비교였던 것일까. 추리소설은 장르소설이고 대중문학이다. 대중문학과 이른바 순문학이라는 것은 엄연히 다른 역할과 기능을 담당한다.
‘미스터리 소설의 스승’이라는 영국의 키팅(Henry Reymond Fitzwalter Keating)은 ?추리소설 작법?(Writing Crime Fiction) 서문에서 이에 대해 비교적 잘 설명하고 있다.
“미스터리 소설이란 흥밋거리로서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면서 쓴 소설이고 그 주제가 어떤 것이든지 범죄의 모습을 띠고 있다. 즉, 미스터리 소설은 작가가 아닌 독자를 우선으로 삼는 소설이다. 순소설은 작가가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믿거나 느끼는 그런 것에 대하여 쓰여진다. 그러나 미스터리 작가는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런 것을 쓰기보다는 독자의 흥미를 끌어들이는 일에 더욱 전념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추리소설은 엔터테인먼트”다.
한국의 추리작가 대부분의 주장도 키팅과 다르지 않다.
누구나 알다시피 추리소설은 장기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엔터테인먼트라는 본래의 기능 약화가 침체를 가속화시켰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한국의 추리소설은 점점 그 자리가 협소해지고 있다. 하여 추리소설은 근래 몇 년간 국내외 작품을 불문하고 해마다 겨우 서너 작품만이 출간되었을 뿐이다. 그나마 외국의 추리소설에 비해 국내의 추리소설은 양적으로 훨씬 적었다.
이번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선택한 올해의 추리소설>은 한국 장르 작가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랄 수 있는 ‘문학성에의 접근’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는 작품들로 선정되었다. 그러면서도 현대적 개념에서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기능을 예년에 비해 좀더 강화시켰다. 현대가 아닌 과거의 추리소설은 홈스나 뤼팽의 캐릭터처럼 전지전능한 캐릭터의 활약에 의해 작품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의 추리소설쓰기는 세계 여러 나라를 둘러봐도 별로 찾아지지 않는다. 이 시대의 홈스나 뤼팽은 액자 속에 존재하는, 누렇게 바래진 사진과 별다르지 않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과학수사가 보편화된 지금, 홈스가 뤼팽이 역할할 수 있는 자리는 더 이상 없다. 또한 홈스나 뤼팽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근본적으로 사회갈등의 요소도 많이 다르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추리소설계는 죽지 않고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매년 출간되고 있는 이 책은 한마디로 한국추리문단의 살아 있음의 증거이자 고뇌일 수밖에 없다.

저비용 고가격의 인문 자연 건강 경제 경영서들과의 경쟁에서 순문학이든 대중문학이든 소설시장은 이미 설 땅을 잃었고, 대중문학의 선두주자였던 추리소설마저 판타지와 신무협, 그리고 날개를 단 듯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인터넷소설’에 밀려 더는 서 있기조차 힘든 형편이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추리소설계는 그래도 죽지 않고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매년 출간되고 있는 이 책은 한마디로 한국추리문단의 살아 있음의 증거이자 고뇌일 수밖에 없다.
한국추리문학은 느리지만 발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책 역시 발전 가능성 높은 신인작가들에게 좀더 무게를 실어주었다. 이전의 명성 있는 작가들보다는 근래 그나마 활동이 활발한, 가능성 높은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선정된 것이다. 판타지소설에 매달렸던 한이, SF작가로 더욱 잘 알려진 방재희를 비롯하여 최근 활발한 활동으로 추리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최혁곤, 현정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추리소설 쓰기를 거부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글쓰기 방법을 추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영상적 상상력이 깃들여진 글쓰기에 치중한다는 점이다.
이들 외에도 표제작으로 선정된 류성희는 단연 눈에 띄는 작가이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그녀는 작품 발표 때마다 늘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이번 작품 역시 그녀의 감수성 깊은 문장이 단연 돋보이고 있다. 류성희와 표제작을 놓고 다툼했던 황세연,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의 세계를 구축한 정석화는 이번에는 사회비판적인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황세연은 사회부조리에 대해 신랄하지만 유쾌하게, 정석화는 섬세하고 치밀한 글쓰기로 마지막 반전에 집중한 점이 돋보인다.
그러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정통적 추리소설쓰기에 치중하는 작가도 있다. 책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후반부에 위치한, 이경재 장태우 최종철 김경수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정통 추리소설의 맥을 잇고 있는 작가들이다. 그들은 홈스와 뤼팽의 뛰어난 능력에서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답게 그 능력이 과대포장되었음 또한 인정한다. 그들에 의해 현재의 홈스와 뤼팽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전환된다. 과거의 정통적인 추리기법을 지향해도 새로이 해석된 홈스와 뤼팽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극명한 두 그룹이 한 책으로 묶인 셈인데, 독자들의 판단에 따라 그 성공과 실패는 갈라질 것이다. 이 때문에 작가의 작품마다 이메일 주소를 일부러 붙여놓았다. 독자와 작가의 직접적인 소통으로 하여 작가의 글쓰기의 방향성을 다시금 다잡으라는 의미이다.

추리소설을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짧지만 뒤끝이 좋은 스토리를, 일상의 인상적인 사건을 떠올리며 읽을 수도 있고, 주인공의 시선을 자신의 것으로 해서, 다른 사람이 된 듯 세상의 영위를 관찰할 수도 있다.

추리문학은 이야기와 묘사를 즐기는 소설이다. 장편의 묘사와 단편의 묘사는, 그 방법이나 감각적인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장편 추리소설에서는 10매로 희미한 이미지가 독자의 머리에 떠오르고, 50매로 그것이 차츰 명확한 상을 갖게 되고, 100매로 완성된다. 만들어진 이미지는 다의적이고 입체적이며 때로는 독자를 압도하는 듯한 박력을 갖는다. 단편은 장편과는 다르다. 놀랍게도 2행이나, 3행으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할 수도 있다. 그 이미지는 순간적인 광망(光芒)이다. 그러나 독자의 감성을 날카롭게 찌른다. 그곳에서 흘러나온 피가 언제까지나 마음에 남는 일도 있다(일본추리작가협회 이사장 기타가타 겐조). 이것이 바로 단편 추리소설이 가진 마력적인 힘이다.
추리소설이란 반전의 문학이고, 인생에서 반전이란 희망이다. 그러고 보면 추리작가들은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마력적인 힘으로 작용하길,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