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검색
본문
Powered by NAVER OpenAPI
-
황홀한 밤
저자 : 스티븐 밀하우
출판사 : 아침나라
출판년 : 2000
정가 : 7800, ISBN : 8988959523
책소개
'마틴 드레슬러 : 어느 꿈 많은 사나이의 이야기'로 퓰리처 상을 수상했던 밀하우저의 신작소설. 만월(滿月) 어느 여름 밤, 현실에서 상처를 머금은 등장인물들은 내면의 도피가 만들어낸 환상적인 모험을 시작한다. 간결하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문체가 작가의 상상력과 어우러져 이야기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키면서 그려지고 있다.
목차
쿱은 초조하게 창문 앞에 서 있다. 그곳엔 거리에 섰을 때보다 더 키가 큰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그녀는 밤보다 더어두운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내려다본다. 가느다란 코, 그래서 그런지 연필로 그어 놓은 듯한 작은 콧구멍, 길고 미끈한 다리. 그 긴 다리 하나만으로도 어느 키 큰 여인이 연상될 정도였다. 복숭아 색의 감촉이 부드러운 드레스 안에 당구공만큼 단단해 보이는 작게 우뚝 솟은 동그란 젖가슴. 길고 가녀린 그녀의 손가락은 눈엔 보이지 않지만 아주 부드러운 어떤 물체를 쥐고 있는 듯하다. 이 모든 그녀의 모습에 쿱은 저도 모르게 대리석 분수와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줄기를 떠올린다.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그의 가슴속에 불현듯 찾아들어 꿈틀거리는 욕망. 누군가가 손톱으로 그의 배를 가볍게 찌르며 가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직은 아무 감각이 없는 그의 양손은 허리춤에서 어설프게 서성이지만, 그의 심장은 가쁘게 뛰기 시작한다. 그의 손톱은 엔진 기름이 묻어 시커멓다. 그녀 샌들 끈 하나 만질 자격도 없는 사내는 아닌지. 자신은 무능하다는 절망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 그는 또다시 술에 취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하지만 다시 용기를 내자. 그래, 이곳은 자유의 땅이 아닌가. 누구든 바라볼 자유는 있지 않은가? 그리고 보지 못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거리가 떨고 있고, 밤 공기가 떨고 있다. 그녀의 긴 다리도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힘을 준 그의 두 눈에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그녀의 검은 선글라스에 빨간 불에서 파란 불로 바뀌는 신호등이 비쳤다. 맨살로 드러난 어깨 위에 그 파란 불빛이 내려앉았고, 아른거리는 불빛에 그녀는 떨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 그는 창문 바로 옆으로 다가선다. 눈을 감고, 발 뒤꿈치를 들어올린 그는 입술을 내민다. 차가운 유리창에 온 마음 가득 담은 키스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