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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와 늑대
저자 : 한승원
출판사 : 문이당
출판년 : 1999
정가 : 9000, ISBN : 8974561182
책소개
<한승원 중단편전집>은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처 입은 민초들의 삶을 통해 토속적 한(恨)의 세계를 그려온 중견작가 한승원 씨의 30년 문학사를 총망라한 전집이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목선」에서부터 최근작「유자나무」에 이르기까지 총 70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이 전집에는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남도 갯가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삶에 대한 치열한 욕망을 건져내는 작가의 독특한 필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목차
높은 사람들이 몇 차례 다녀간 뒤부터 우리 병실은 좀 차분해졌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밥티꽃송이같이 크게 부풀어난 눈송이가 입원실 창유리를 타고 창턱에 앉았다. 입원실 앞뜰의 나사못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자라 있는 나무 위에도, 의사선생님들이 공을 치곤 하는 정구장 위에도, 그 눈송이들은 내려 쌓였다. 시내는 안개같이 부연 눈보라 속에 잠기고 있었다. 공원의 다른 나뭇가지 위로 하얗게 어깨를 내민 탑도 그 부연 눈보라에 묻히고 있었다. 누님은 먹물을 들인 듯 길고 검은 머리채를 등허리에 늘어뜨린 채 유리문 앞에 서 있었다.
"돼지밥을 조금 데워서 주고 그래야 쓸 것인데......"
어머니가 일어나 앉아 눈보라를 바라보면서 말햇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뒤란 나무청 속의 황새를 생각했다. 황새에게 먹이를 주는 만석이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 모습 위로 밥티꽃 같은 눈송이들이 내렸다. 우리집 마당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그것이 처마에 맞닿도록 높아졌다.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는 만석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눈발 사이로 땅거미가 기어들고 있었다. 눈발 속에 공원의 마른 나뭇가지가 잠기고, 시내의 불들이 휘황찬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