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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웨하스 의자
저자 : 에쿠니 가오리
출판사 : 소담출판사
출판년 : 2004
정가 : 9500, ISBN : 8973818163

책소개


"웨하스 의자는 내게 행복을 상징했다. 약하고 무르지만 반듯한 네모. 그 길쭉한 네모로 나는 의자를 만들었다. 조그많고 예쁜, 그러나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를. 눈 앞에 있지만…, 그리고 의자는 의자인데 절대 앉을 수 없다." (p.71)

웨하스 의자는 말 그대로 '웨하스'와 '의자'의 합성어. 과자로 만든 의자는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과자로 만든 의자니까 보기에는 예쁘고 갖고 싶고 달콤한 향이 느껴질지 몰라도 절대로 앉을 수는 없다. 의자라는 본질적 속성에 충실하지 못하다. 그리고 곧 부서지고 부식되고 마는 웨하스는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란 것에 귀속된다. 끝이 예정되어 있는 것. 결국, 이 작품 제목이 암시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어떤 상황에 근본적인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며, 그 문제로 인해 언젠가는 끝을 맞게 되는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한 남자를 사랑하고,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 그런데 사랑의 단어를 속삭이면서, '매일 조금씩 망가진다'고 고백한다. '사랑하는 것' 자체는 예쁘고, 달콤하고, 그것이 진실이며 전부인데, 왜 이런 의식이 작용하는가? 모순. 결국, 주인공의 사랑은 현실에서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마치 과자로 만든 의자에는 부서지기 때문에 앉을 수 없는 것처럼 그에게는 부인이 있고, 두 아이가 있다. 처음부터 장애를 안고 사랑을 시작한 주인공의 상황을 비유한 것으로 그녀에게 웨하스 의자는 언제까지 행복을 상징할 수 있을지….

목차


그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종점. 그곳은 거친 벌판이다. --- p.61

비 내리는 날의 일터에서는, 물감 냄새가 한결 짙어진다. 나는 지금 조그만 그림을 그리고 있다. 파란 그림이다. 색을 덧칠한 캔버스의 축축한 표면을 페인팅 나이프로 긁어, 첼로 하나를 그리고 있다. 긁어낸 자국은 상처처럼 애처롭게 캔버스의 하얀 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 p.87

만나러 와주는 것도 애인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도 애인이다. 목욕탕의 곰팡이를 제거해주는 것도, 햄을 썰어주는 것도. --- p.99

나는 애인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애인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니까. 내게 그림을 그리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은 비슷한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애인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언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언어로 사고하려 하면, 늘 같은 자리를 맴돌고 만다. --- p.114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말했다.
"그때 당신이 있어 주었으면, 나 그렇게 고독하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외로워지고, 애인의 미소도 그 외로움을 치유해주지 못한다. 외로움은, 불쑥 찾아와 입을 쩍 벌린다. 그런 때마다 나는 걸려 넘어져 송두리째 삼켜져버린다. --- p.116

나는 애인 덕분에 이 세상에 겨우 발을 붙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기묘한 감각이다. 애인이 전부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애인과 함께 있는 내가 전부라고 느낀다. 나는 그것을, 외롭다고 해야 하는지 충족돼 있다고 해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럽다. 옳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옳지 않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몰라, 그만 생각을 포기한다. --- p.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