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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포대기
저자 : 공선옥
출판사 : 삼신각
출판년 : 2003
정가 : 9000, ISBN : 8970021353
책소개
사랑에 관한 진부한 표현 가운데, "사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는 일이나, 그것이 가족과 결부가 된다면, 사랑의 당사자가 장애인 그것도 여성일 경우의 사랑은 그 달콤함을 넘어서는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자 가족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정신장애 딸의 사랑을 막아서는 가족들의 행위는 사랑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붉은 포대기'란 대답이 준비돼 있다.
목차
이 소설은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어떤 사랑이냐 하면, 우리가 흔히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한 지체장애 여성의 사랑이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이나 장애를 지닌 사람이나 똑같은 사람임에는 틀림없고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살아가기가 녹록치 않은 것처럼 사랑을 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그 장애여성이 어떻게 한 인간으로 사랑 하나를 얻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를 이 소설에서는 적고 있다.
그리고 또한 이 소설은 '가족'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가족이, 혹은 핏줄이 그 구성원 개개에게 어떻게 상처 주고 어떻게 그 상처를 감싸안는가. 그 지겹고도 다정한 가족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잃는 것은 무엇이고, 얻는 것은 무엇인가. 말하자면, 이 소설은 사랑과 가족이라는 두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소설인 것이다.
'신평'이라 불리는 작은 시골마을에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인혜는 내려온다. 그녀는 사랑에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삼십대 중반의 미혼여성인데 집에는 삼십대 초반의 여동생 수혜가 있다. 어머니의 병간호와 치매에 걸린 구십 할머니의 시중들기, 그리고 정신적 장애를 가진 막내딸을 돌보는 것이 아버지 황씨가 부담스러워서 자신을 시골집으로 불러내렸다고 생각하는 인혜는 실패한 사랑의 경험으로 인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랑에는 그만한 비용이 따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철저하게 사랑불신론자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 결혼도 하지 않은 동생 수혜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여동생이 임신을 했다는 것에 인혜를 포함한 가족들이 나서서 수혜의 사랑을 차단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경주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장애여성에게 가해져 오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가족들이 수혜의 사랑으로부터 수혜를 '보호하는' 강도가 더해질수록 수혜는 정신이상 증세까지를 보이는데, 철저한 사랑불신론자였던 인혜는 차츰, 가족들의 보호를 내세운 폭력으로부터 수혜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울면서 사랑에 대해 그동안 쌓아왔던 불신의 탑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가치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황인혜, 수혜 자매의 사랑을 찾기 위한 눈물겨운 도정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두 자매를 곁에서 지켜보며 말없이 응원하는 사람은 어머니 박씨다. 박씨는 상처한 황씨에게 재취로 들어와 전처가 낳은 어린 두 자식을 '포대기'로 업어 키웠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다 큰 지금, 위암수술을 하고 회복이 덜 된 몸으로 자식들이 낳은 아이들을 또 포대기로 감싸안는다.
신평은 황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자작일촌이다. 한마을 전체가 전부 일가붙이들인데, 때로 핏줄로 얽힌 일가붙이라는 끈끈한 인연은 한 개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억압이 되기도 한다. 수혜의 임신사실이 황씨 일가붙이 전체의 수치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것이 그 한 예일 수 있겠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하는 가족,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개인을 억압했던 일가들이 사는 '신평'이라는 공간은 어찌 보면 어린 시절 우리를 꽁꽁 묶긴 했지만 그 안에서 포근하기도 했던 포대기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이한테나 엄마한테나 편리한 유모차가 포대기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긴 했지만, 때로 어린 사지가 결박당했다 해도 그 안에서 포근하기도 했던 포대기가 있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현대생활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핏줄이라는 이유로 시시콜콜 간섭하고 때로 억압하고, 때로 폭력적인 양상을 띠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바로 우리시대에 아직 남아 있는 포대기 정신의 일종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