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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의 세계
한시의 세계
저자 : 심경호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년 : 2006
정가 : 15000, ISBN : 8954601138

책소개


드넓은 한시의 세계로 안내하는 한시 여행의 길잡이. 한시 감상의 기초 개념과 한시 양식에 대한 내용들을 풍부한 한시와 쉬운 글로 자세하게 풀이해 누구나 한시의 깊은 맛과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목차


한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

절제된 언어형식에 깊은 사상과 감정을 담아내는 한시는 참으로 매력적인 문학이지만, 접근하기에 쉽지만은 않다.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새기는 것만도 벅찬데다 고유의 운율과 형식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며, 또 글자 하나, 표현 하나에 담긴 상징적 의미와 오랜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시의 주제조차 파악하기 곤란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해서 한시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한시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만 갖고 섣불리 덤벼들었다가는 이내 좌절하고 시들해져버린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일런가. 고전과 한문에 관한 높아진 관심에도 불구하고 한시에 대한 체계적이고 친절한 입문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친절한 표지판과 자상한 지도가 있다면 초행길도 마음 편안한 법. 이 책 『한시의 세계』는 한시 구성의 기본 원리에서부터 한시 미학의 핵심적인 개념들, 한시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 한시 창작의 방법론 등을 200편이 넘는 다채로운 한시와 더불어 정연하게 설명하고 있어, 한시의 광활한 풍경을 조망하고 그 참맛을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다. 또한 『시경』부터 당시, 송시뿐 아니라 많은 뛰어난 한국 한시까지 골고루 소개해 한시의 세계 전체를 균형 있게 조망할 수 있게 한 점 역시 이 책의 빼어난 점이다.
이 책은 『김시습 평전』 『한시기행』 등을 통해 고전 한문학의 현대화에 많은 공을 들여온 고려대 심경호 교수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월간 『현대시』에 연재했던 것을 모아서 다듬고 덧붙여 낸 것이다. 열다섯 장으로 나누어진 주제들 중 관심이 있는 것부터 차례로 읽어나가도 무방하지만, 초심자라면 맨 앞의 「나도 한시를 지을 수 있을까?」에서 평측과 압운 같은 한시 구성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가는 편이 좋다. 이 장에서 예로 든 바, 『춘향전』의 이도령이 과거급제할 때의 시제였다는 “춘당춘색고금동春塘春色古今同”의 다음 구절을 한번 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미 한시의 세계 가운데 발을 들여놓은 것과 다름없다.

깊고, 넓고, 향기로운 한시의 세계

한시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감흥을 허락해준다. 한시가 객관적인 경치 즉 경물景物의 묘사와 주관적인 심정 즉 정사情思의 서술을 어떻게 구분하는지를 알고, 무심한 듯한 풍광 묘사가 실은 시인에게 어떤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 쓰이는 기흥起興의 방법임을 알면, 비슷비슷하게만 보이던 한시의 묘사가 시인의 내면과 얼마나 치밀하게 맞물려 있는지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한시는 산수 자연을 노래하는 것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서 교훈을 취하기도 하고, 민중의 생활상을 자세히 묘사하기도 하며, 높은 경지의 구도정신을 노래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랄한 풍자의 목소리로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며, 또 때로는 기발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사물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내용과 소재의 한시들을 접하는 것도 이 책의 재미다.
나아가 한시 창작에서 대가들의 전범을 중시하느냐 개인적인 깨달음을 중시하느냐 하는 격조格調와 신운神韻의 방법론을 알고 한시에서 표절과 환골탈태換骨奪胎의 문제를 알면 한 편의 한시 뒤에 깔려 있는 역사적인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유명한 정지상鄭知常의 「친구를 전송하며送友人」가 강엄江淹과 두보杜甫에서 시상과 구절을 따온 것에서 문학 일반의 창작과 모방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휴대가 간편한(?) 한시의 매력을 말한다. 과연, 한시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웅얼거려볼 수 있고, 막걸리를 마실 때에도 이백의 시집을 탁자 위에 두고 시를 짚어가며 이야기할 수 있다. 목적 없이 떠난 여행길에서 문득 김시습의 시구를 읊을 수 있으며, 도산서원의 매화 앞에서 이황의 시구절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책과 더불어 머릿속에 멋진 한시 몇 수 지니고 다니면서 틈틈이 읊조려볼 수 있다면, 그도 그리 대단한 사치는 아니지 않을까.


春宵一刻値千金 봄날 밤은 한 시각이 곧 천금
花有淸香月有陰 꽃은 맑은 향기 품고 달빛은 어스름하다.
歌管樓臺聲細細 누대에선 노래와 피리 소리 가늘게 들려오고
?韆院落夜沈沈 그네만 남은 정원에 밤은 점점 깊어간다.

술자리가 벌어졌던 누대에도 밤이 깊자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희미하다. 그래도 불빛이 여전히 휘황한 누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시인은 정원에 홀로 서 있다. 낮에는 여인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깔깔대는 웃음을 흘리며 그네를 뛰던 정원이다. 밤이 깊도록 시인은 홀로 깨어 서성인다. 독성獨醒, 이것이 한시의 영원한 주제이다. 세상 물결에 휩쓸려 잠길락 뜰락 하면서 흘러가면 그만인 인생을,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 이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시에는 그 긴장이 있다.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