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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집
따뜻한 집
저자 : 박상우
출판사 : 샘터사
출판년 : 1999
정가 : 6500, ISBN : 8946412844

책소개


199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인 박상우의 자전적인 가족 소설로, 항상 함께 있기에 쉽게 잊고 살았던 가족의 소중함을 웃음과 감동으로 일깨워준다. 가난한 소설가의 아내, 그리고 그들 사이에 갓 태어난 아들 정호의 성장과 더불어 벌어지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목차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처음 배우는 말, 그것이 보나마나 `엄마`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정호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믿었었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서 육 개월이 지날 때까지도 그렇게 믿었었다.

하지만 생후 육 개월이 지날 무렵, 나는 정호를 통해 아주 특이하고 이상한 사실 한 가지를 깨우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을 제외해 놓고, 나는 지금까지 그 사실을 외부의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정호 아빠가 팔불출 같다는 얘기를 듣고 싶은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아빠는 못되어도 팔불출 같은 아빠가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아내와 아이가 분만 입원을 끝내고 집으로 오던 날부터, 나는 소설 원고를 쓰는 일 이외에 전혀 다른 일 한 가지를 덤으로 치러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좁은 단칸방 한구석에다 상을 펼쳐 놓고 소설을 쓰는 일 이외에, 아랫목을 차지하고 누운 조막동이와 그 옆에 누운 산모의 야간 수발을 도맡아 치러 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야 어른이니까 밤과 낮을 구분할 줄 알지만, 이제 엄마 뱃속에서 갓 빠져 나온 아이로서는 그런 구분이 있을 턱이 없었다. 갓 태어난 놈에게 밤새도록 군기 잡혀야 하는 신참내기 아빠의 정신없는 훈련 시절, 요컨대 밤으로의 긴 여로가 드디어 대장정의 막을 올린 것이었다.

원고를 쓰다가 아이가 깨어 칭얼거리면 잽싸게 상을 물리고 달려가서 무조건 `울룰룰룰루, 까꿍!`을 했고, 그래도 칭얼거리면 고 조막만한 생명체를 들어올려 `잘도 잔다, 우리 아가`를 녹음기처럼 되풀이해야 했다. 그리고 그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핏덩어리가 내 새끼라는 게 감탄스러워서 되고 말고 혼자서 무수히 많은 말을 나는 지껄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