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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저자 : 류시화
출판사 : 김영사
출판년 : 2002
정가 : 9900, ISBN : 893491212X
책소개
시인과 구도자의 모습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류시화. 이 책은 그의 15년에 걸친 인도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책 하나 하나의 구절들에는 그가 꿈꿔왔던 자유의 본질, 그리고 깨달음에 관한 사색과 명상들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그가 일반인들이 평생 만나보기 힘들 거창한 사람들과 유적지들을 돌아다닌 것은 아니다. 도망간 새를 기다리는 새점 치는 남자, 닭의 머리에 색을 칠해 희귀조로 팔려던 남자, 시를 좋아하는 강도 두목 등이다. 작가에게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원형적 모델'이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책은 "아 유 해피?"로 끝난다. '신'은 이상향의 세계를 뜻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마치 주문처럼 '노 프러블럼'을 외치며 그들의 이상향을 만들어냈다. 자칭 '현대'를 살아간다는 우리들에게는 실소를 자아내는 일화들이 많지만, 그냥 흘려버리기엔 너무 무거운, 삶이 뭘까 궁금 그대에게 좋은 책.
목차
그는 나를 보자 반갑게 손짓을 했다. 외국인인 내게 갑절의 복채를 챙길 속셈이었다. 갑절이라지만 10루피(3백 원)에 불과했기 때문에, 나는 오랜만에 복점이나 쳐볼까 하고 새장 앞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점을 치는 방식은 간단했다. 남자는 내 이름을 묻고, 그 다음에는 아주 중요하다는 듯 생년월일과 집의 방향과 아버지의 이름을 물었다. 그런 뒤 새장 문을 열손가락으로 새장을 두세 번 툭툭 쳤다. 그러면 새장 안에 있던 초록색 앵무새가 걸어나와, 뭉툭한 부리로 앞에 놓인 카드들 중 하나를 뽑아 올리도록 되어 있었다. 점괘 카드들은 마치 무굴 제국 시대 때 만든 것처럼 손때가 묻고 몹시 지저분했다.
그런데 이 바라문의 앵무새는 약간 고집이 세었다. 몇 차례나 새장을 두들겨도 좀처럼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바라문이 새장을 90도 각도로 기울이기까지 하자, 앵무새는 마지못해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새는 잔뜩 못마땅한 얼굴로 점괘 카드들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카드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부리를 꺾어 슬며시 주인 바라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바라문과 나는 새가 어서 카드를 뽑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앗! 하는 사이에 앵무새는 휙하고 날아가 버렸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나도 놀라고 바라문도 놀랐다. 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넓디넓은 강을 날아 멀리 사라져 버렸다.
새주인 바라문이 받은 충격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공들여 훈련시킨 앵무새가 한순간에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자, 그는 한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쳤다.
"당신은 정말 운이 나쁜 사람이오!"
그는 고뇌에 찬 얼굴로 세 번이나 그 말을 반복했다.
새가 날아간 것이 유감이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 운이 나쁜건 새가 아니라 그였다. 하지만 새점 치는 남자의 해석은 달랐다. 내가 너무 운이 나빠 뽑을 점괘가 없기 때문에, 새가 충격을 받아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몹시 흥분한 어조로 자기 생애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을 순간적인 재치로 만회할 줄 아는, 기발하기 짝이 없는 인도 점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