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검색
본문
Powered by NAVER OpenAPI
-
-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저자 : 이연주
출판사 : 세계사
출판년 : 1997
정가 : 5500, ISBN : 8933810153
책소개
“(책소개) 반인문주의적 태도의 격렬한 전복적 추동력은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시인의 치열한 자기모색에서 비롯된다.” ―임태우(문학평론가)
목차
담배 한 개피처럼
어쩌다가 술에 맡겨버린 인생이 되어버렸을까
이런 날, 아파트 5층 계단을 오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을 따고 들어서면 얼어붙은 채 널브러진 이불짝들,
길게 펴본 적이 없는 몸뚱어리 조금씩
얼음 속으로 기어든다
폐 속을 검게 물들이는 구름 떼거리들, 뜻없이 담배를 피우고
깊이 빨았다가 뿜어낼 때
나를 끌고 다닌 것은 익사한 쥐의 퉁퉁 불은 원한이었구나
지상 한 구석에서 수없이 가위눌린 부딪김이며
남은 시간의 부스러기들......
타고 있다, 이대로 살다 저버리면 그뿐,
어눌하게 길든 목젖이며 발뒤꿈치가
달변의 기회를 엿보는 일은 아마 없으리
이런 밤엔 죽은 쥐새끼들 유난히도 찍찍 울어쌓고
무엇이 그들을 불러 밤새 여기 머물다 가게 하는지
눈을 뜨면 희멀건한 아침,
요때기나 장판의 꽃무늬를 조금 태워 놓고
다 타버린 허연 백골의 재가 길게 누워 있다
후들거리는 팔목 뻗어 꽁초 쓸어 담으며
너, 누구의 시신이란 말인가 (p.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