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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도시의 즐거움
세속도시의 즐거움
저자 : 최승호
출판사 : 세계사
출판년 : 1997
정가 : 5500, ISBN : 8933810048

책소개


그의 시는 문명에 대한 강렬한 적의의 노선을 취하고 종말론적 위기감에 압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초월이나 내면세계로의 도피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는 다분히 자학적으로 절망의 완성을 강화할 만큼 절망의 바로 읽기를 일깨우면서 세상을 등지려 하지도 않고 등질 수도 없는 세계 내 존재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그의 시는 실존적이고 사회학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치 오염된 자만이 오염된 것을 비판할 수 있는 것처럼 그가 세속화되어 있기에 세속화를 비판하는 자기모순을, 그 이중적 복합성을, 현대인의 본질로 인식하고 있는 점이다. 외부의 적을 공격하면서 그 적을 자신의 내부에도 간직하고 있는 현대인의 본질적 모순을 그는 정확히 읽고 있는 것이다. - 김준오(문학평론가·부산대 국문과 교수)

목차


세속도시의 즐거움 2

상복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
곡하던 여인을 늦은 밤 손익을
계산해 본다.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끌어모은 것들을 다 빼앗기고
(큰 도적에게 큰 슬픔이 있으리라)
누워 있는 알거지의 빈 손,
죽어서야 짐 벗은 인간은
냉동실에 알몸거지로 누워 있는데

흑싸리를 던질지 홍싸리 껍질을 던질지
동전만한 눈알을 굴리며 고뇌하는 화투꾼들,
그들은 죽음의 밤에도 킬킬대며
잔돈 긁는 재미에 취해 있다.

외로운 시체를 위한 밤샘,
쥐들이 이빨을 가는 밤에
쭉정이 되는 추억의 이삭들과 침묵 속에서
냄새나는 이쑤시개를 들고 기웃 거리는
죽음의 왕.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홑거적 덮은 알몸의 주검이
혀에 성에 끼는 추위 속에 누워 있는 밤,
염장이가 저승의 옷을 들고 오고
이제 누구에게 죽음 뒤의 일을 물을 것인지
그의 입에 귀를 갖다 댄다
죽은 몸뚱이가 내뿜는다 해도
서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