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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자서전
배고픔의 자서전
저자 : 아멜리 노통브
출판사 : 열린책들
출판년 : 2006
정가 : 8500, ISBN : 8932906009

책소개


놀라운 상상력과 거침없는 스타일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는 아멜리 노통브가 이번에 선택한 소재는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작가적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초월적 배고픔>에 대해 말하는 이 작품으로 노통브는 두 번째로 공쿠르상 후보에 올랐다.

『배고픔의 자서전』은 지금까지 출간된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들 중에서 자전적 색채가 가장 짙은 작품이다.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마저 <아멜리 노통브>이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문화와 다양한 군상들을 접하며 세상 모든 것에 끔찍할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보였던 그녀의 삶, 그것은 모두 <배고픔>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될 수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향해 나아가는 초월적 배고픔에 대해 말하는 이 소설은, <아멜리 노통브>라는 복잡하면서도 매혹적인 인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목차


만약 이 책의 처음 만 부 중 한 권을 구입했다면, 당신은 굉장한 <수집품>을 소유한 셈이다. 작가와 편집자가 삭제해 버린 <소설>이라는 언급이 나타난 유일한 판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픽션인가, 사실의 기록인가? - 리르

1992년 첫 작품을 발표한 이래로 6백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내놓는 작품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아멜리 노통브의 열세 번째 소설 『배고픔의 자서전』이 전미연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특이하게도 전통적인 장르 표시(표제지의 제목 하단에 쓰이는 <소설>이나 <에세이> 등) 없이 책의 뒷면에 <배고픔, 이건 바로 나다>라는 도발적인 문구만을 올린, 이 작품은 2004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하며 또 다시 노통브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놀라운 상상력과 거침없는 스타일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는 아멜리 노통브가 이번에 선택한 소재는 자기 자신이다. 사실 노통브의 소설들은 모두 어느 정도 작가 자신을 반영한다. 비단 『두려움과 떨림』처럼 실제 경험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라 해도 그녀의 작품들에는 노통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독특한 감각과 세계관이 녹아들어 있다. 아마도 이것이 그녀가 우리를 단순한 독자가 아닌 노통브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노통브 스타일>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작가적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초월적 배고픔>에 대해 말하는 이 작품으로 노통브는 두 번째로 공쿠르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한 번 자신이 현대 프랑스 문단을 주도해 가는 작가 중 한 사람임을 입증했다.

『두려움과 떨림』,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배고픔의 자서전』은 모두 100퍼센트 자전적 이야기이다. 나는 사람에 관하여 글을 쓴다. 그것뿐이다. 내 작품의 근본이 되는 주제는 인간,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의 인간이다. 몇 가지 성찰적인 주제들이 있고, 나는 그것들을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내가 해부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 락튀

『배고픔의 자서전』은 지금까지 출간된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들 중에서 자전적 색채가 가장 짙은 작품이다. 심지어 이름마저 <아멜리 노통브>인 주인공의 이야기는 작가가 걸어 온, 혹은 우리에게 알려진 그녀의 삶의 궤적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1967년 일본 고베 출생,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방글라데시, 미국 등 세계 각지를 떠돌며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라틴 철학을 공부하고 작가의 길을 걷게 됨.>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단순히 성공한 작가의 자서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작가 <아멜리 노통브>를 간과하는 일이 될 것이다.
마치 그러한 우리의 생각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이야기는 엉뚱하게도 전체적인 줄거리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오세아니아 군도에 자리한 섬나라 바누아투로부터 시작된다. 성공한 작가인 주인공은 오세아니아에 실제로 존재하는, 역사상 한 번도 기근을 겪은 적이 없는 풍요와 고립의 섬 바누아투의 한 작가로부터 분노에 찬 편지를 받는다.

아멜리 노통브에게,
그래요, 압니다, 당신이야 통 상관도 안 하겠지요.
2003년 7월 11일 (p. 8)

이 난데없는 분노의 근원을 살피던 그녀는 그것이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한 바누아투의 운명, 즉 <배고픔의 부재>에서 기인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비극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발견한다.

지금 내가 매달리고 있는 문제는 나 자신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바누아투에 내가 매료되는 이유는, 그곳에서 나와 반대되는 존재의 지리적 표현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배고픔, 이건 바로 나다.

내가 배고픔을 독점하겠다는 건 아니다. 배고픔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속성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감히 이 분야에서는 챔피언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내 기억 속의 아무리 후미진 곳을 들춰 보아도 나는 항상 너무나 배가 고팠으니까.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 집에서는 뭐 하나 부족한 적이 없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내가 나의 배고픔에서 남과는 다른 점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내 배고픔은 사회적으로 설명 불가능하다. (pp. 19~20)

어린 시절부터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문화와 다양한 군상들을 접하며 세상 모든 것에 끔찍할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보였던 그녀의 삶, 그것은 모두 <배고픔>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될 수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향해 나아가는 그 초월적 배고픔은 <아멜리 노통브>라는 복잡하면서도 매혹적인 인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이 <배고픔의 자서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격적인 노통브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다시 출발한다.

『배고픔의 자서전』에 쓰인 모든 것은 사실이며, 모두 내게 일어난 일들이다. 물론, 전적으로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배고픔에 관해 말하고 있다.
- 레퓌블리캥 로랭과의 인터뷰

제목에서조차 자전적 이야기임을 시사하고 있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노통브와 마찬가지로 1960년대 말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일본인 보모의 손에 자라났다. 자신의 정신적 고향이 된, 부드럽고 충만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의 나라에서의 삶은 그녀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전기를 맞이한다. 줄을 맞추어 걷고 입을 모아 반가를 부르는 민들레반의 유일한 벨기에산 민들레였던 그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획일적인 삶을 강제하는 조직 사회에 대한 염증과 일탈의 자유를 경험한다. 그리고 설탕과 온갖 달콤함의 세계, 신의 음식인 초콜릿, 샴페인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운명은 다시 그녀를 문화혁명 직후의 중국으로 옮겨 놓는다. <주린 배의 챔피언>, 배고픔의 나라 중국에서 그녀는 그리움과 갈증, 배고픔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따라서 농축된 형태로 존재하던 이 산리토 게토에서의 삶은 생리적 배고픔을 넘어서 지식과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 나아가 그런 탐닉 속에 기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1975년, 주인공은 다시 문화적 풍요로움의 정점에 있으며 모든 것이 넘쳐흐르는 도시 뉴욕으로 옮겨 간다. 그곳에서 노통브는 그녀가 자신이 알고 지냈던 두 세계, 달콤함의 나라와 배고픔의 나라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여전히 무리속의 이방인인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또래 아이들과의 우스꽝스러운 애정 표현과 덧없는 헤어짐 속에 이제 노통브는 보통의 아이처럼 성장해 나간다.

엄마는 수영장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우리 둘을 영국인 클럽에 억지로 끌고 나갔다. 수영장 따위, 나는 안중에도 없었는데 말이다. 여기서 내게 끔찍한 불행이 찾아왔다. 가냘프고 호리호리 섬세하게 생긴 열다섯 살짜리 영국 사내아이가 내가 보는 앞에서 물속으로 뛰어드는 게 아닌가. 내 속에서 뭔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내가 남자 아이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부족한 게 딱 그거였던 것이다. 내 몸은 배신자였다.(p183)

내 호르몬의 공(空) 상태 밑바닥에는 혼돈이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밤만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고, 파인애플과 한판 결투를 벌였다. 파인애플이라는 과일이 지닌 과잉이라는 속성 때문에 내 잇몸에서 피가 난다는 사실을 그동안 눈여겨보아 둔 터였다. 나는 바로 이런 육탄전이 필요한 상태였다. 나는 커다란 칼을 집어 들고 파인애플 잎을 잡았다. 몇 번 칼질을 해서 껍질을 벗겨 낸 뒤 속까지 먹어 치웠다. 아직 피가 나오지 않으면 파인애플을 하나 더 잘랐다. 그러면 비로소 내 헤모글로빈으로 흥건하게 물든 노란 속살이 보이는, 쾌감의 순간이 왔다.
이걸 보고 있으면 나는 짜릿짜릿한 쾌감으로 미칠 것 같았다. 나는 황금색의 심장에 있는 붉은색을 먹고 있었다. 파인애플 속에서 느껴지는 관능적인 피 맛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한층 더 속도를 높였고, 피는 더 많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과일과 나, 둘의 결투였다. (p. 184)

그러나 계속되는 육체적 성장과 처음 느낀 사랑의 감정으로 그녀의 몸과 마음은 혼돈 속으로 빠져 든다. 성장의 혼돈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육체를 죽여 나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거식증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 이 배고픔의 추구는 이내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배고픔의 절정에서 다시 육체의 세계로 끌어 내려진 그녀는 이제 글쓰기에서 구원을 얻는다.

거식증은 내게 해부학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내가 해체해 버렸던 이 몸뚱이를 알게 되었다. 이제 몸을 다시 만들어 가야 한다. 이상야릇하게도 글쓰기가 도움이 되었다. 글쓰기는 무엇보다 육체적인 행위였다. 내 안에서 뭔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세포 조직 비슷한 것을 이루어 내 몸이 되었다. (p. 201)

글쓰기라는 대안, 성장기를 거처 어른이 되어 버린 그녀를 달래줄 육체적 활동, 이것의 결과는 자서전이었다. <아멜리 노통브>의 <배고픔의 자서전>.